"R&D 비용 지원만큼 기술 성능 점검할 '테스트베드' 절실" 한목소리
1000억 투입해 클린룸 임대, 설비 구축 시 빠르면 8개월 내도 가능

국내 반도체 소재·장비업체가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정부에 ‘성능평가 팹(테스트베드)’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밝힌 이후 정부가 뒤늦게 반도체 소재·장비 국산화를 위해 매년 1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테스트베드는 국내 반도체 소재·장비업체가 개발한 기술을 실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지 ‘성능을 점검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춘 공장’을 말한다. 업체들이 공동으로 팹을 사용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현재 대부분 국내 반도체 소재·장비업체는 일본 업체들과 달리 자체 테스트베드가 없는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정부가 연구·개발(R&D)을 위한 예산을 이들 업체에 배정해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이 기술이 적합한지 점검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픽=송윤혜

4일 조선비즈는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가 지난해 1~3월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사 44개, 장비사 22개 등 총 66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비공개 설문조사 결과를 입수했다. 이에 따르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사들은 정부의 R&D 예산 배정(22%)만큼이나 테스트베드 지원(22%)이 반도체 소재·장비 국산화를 위한 핵심 과제라고 보고 있다.

업체들 대부분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요구하는 12인치(300㎜) 웨이퍼 기반 평가시설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도체 장비업체 중 29%는 아예 테스트베드가 없고, 테스트베드를 갖추고 있는 71% 중에서도 12인치 장비 대응이 가능한 회사는 6%에 그쳤다. 반도체 소재·부품업체도 75%는 아예 테스트베드가 없고, 있더라도 그 용도가 한정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도 테스트베드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공용 나노팹(한국나노기술원·나노융합기술원·나노종합기술원)이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요구하는 웨이퍼 크기의 성능 평가는 불가능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 반도체 소재 업계 관계자는 "공용 나노팹은 8인치(200㎜) 웨이퍼 기반 개발 제품에 대한 성능 평가를 목표로 10여년 전 설립된 이후 추가 설비 투자가 없었기 때문에 현재 기술적 진화를 따라가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에 업체들은 직접 삼성, SK하이닉스를 찾아가 기술이 적합한지 평가해달라고 요청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들 마저도 ‘평가’만을 위한 시설이 별도로 구축돼 있지는 않기 때문에 제품 양산을 위해 풀가동 중인 공장을 국내 소재·장비업체 테스트를 위해 내주기가 어렵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클린룸을 임대해 장비만 집어 넣으면 빠르면 8개월 안에도 테스트베드를 구축할 수 있다"면서 "자체 테스트베드를 갖추고 있는 일본 소재·장비업체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R&D 비용 지원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클린룸 임대(100억원, 1000평 5년 임대 기준), 12인치 웨이퍼 기반 공정(380억원), 분석 측정장비(187억원), 시설 유지·보수·재료비(250억원, 5년 기준) 등으로 테스트베드 설립에 약 1000억원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