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바쁜 한국 증시가 외국인과 기관의 쌍끌이 순매도에 무너졌다. 1% 넘게 빠진 코스피지수는 나흘째 약세를 이어갔고, 코스닥지수는 사흘 만에 하락 전환하며 700선 탈환을 다음 기회로 미뤘다. 일본의 수출 제재가 기업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무디스 보고서는 반도체주(株) 투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를 흔들었다.

3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23%(26.00포인트) 떨어진 2096.02에 마감했다.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1097억원, 436억원을 순매도했다. 개인은 1559억원어치를 샀다. 외국인은 코스피200 선물시장에서도 6151계약을 팔았다. 기관은 353계약, 개인은 4796계약 매수 우위를 보였다.

코스닥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0.46%(3.21포인트) 하락한 693.04에 장을 마쳤다. 외국인과 기관은 코스닥시장에서도 각각 565억원, 601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저가매수에 나선 개인은 1189억원을 순매수했다.

조선DB

이날 한국 증시는 장 초반에 잠시 상승 흐름을 보이다가 이내 동력을 잃고 낙폭을 키웠다. 중국과 휴전에 합의한 미국이 무역분쟁의 화살을 유럽연합(EU)·베트남 등 다른 나라로 돌리며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킨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전날 미국은 EU에 대해 40억달러(약 4조6872억원) 규모의 추가 관세 대상 품목을 공개했다. 또 미 상무부는 베트남 철강 제품에 관해서도 관세를 발효했다.

여기에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무디스의 발표는 투자심리를 더욱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무디스는 한국 반도체 회사들이 일본이 수출 규제 품목으로 정한 플루오드 폴리이미드와 리지스트 등을 일본에서 90% 이상 사오는 현실을 근거로 제시했다.

한국 수출의 기둥인 반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에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005930)는 1.84%, SK하이닉스(000660)는 3.22% 주저앉았다. 삼성전기(009150), LG이노텍(011070), LG전자(066570), 삼성SDI(006400), LG디스플레이(034220), 하이트론(019490), 아남전자(008700), 일진디스플(020760), DB하이텍(000990), 대덕전자(353200)등도 전장 대비 떨어졌다.

또 정부가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6개월 전보다 0.2%포인트 낮아진 2.4~2.5%로 제시한 점, 중국 증시가 차익매물 출회에 약세를 보인 점 등도 한국 증시의 활력을 떨어뜨린 배경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GDP 성장률 하향조정은 원화 약세 압력을 가중시키고 외국인의 현·선물 매도 규모를 키웠다"고 분석했다.

코스피 업종별로 보면 전기·전자를 비롯해 증권, 건설, 보험, 은행, 운송장비, 섬유의복, 기계, 통신, 종이목재, 철강금속, 운수창고, 비금속광물, 음식료품, 의약품 등도 부진한 하루를 보냈다. 전기가스, 의료정밀 등의 업종은 전날보다 올랐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 중에서는 셀트리온(068270)LG화학(051910), LG생활건강(051900), NAVER(035420)등이 상승 마감에 성공했다. 현대모비스(012330), POSCO, 신한지주(055550),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SK텔레콤(017670), KB금융(105560), 삼성물산(028260)등은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조심스러운 시장 분위기가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경기 지표에 대한 우려가 높을 뿐 아니라 기업들의 2분기 이익도 역성장할 확률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하 행보에 대한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7월에 금리를 내릴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생각하지만, 시장 기대치(50~75bp)만큼 인하할 지는 불투명하다"며 "시장은 7월 말 이후 방향 탐색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