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용 전기요금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제도 폐지 검토
-누진제 폐지 혹은 개편 검토

한국전력(015760)이 전기요금 현실화에 나섰다. 앞서 한전 이사회는 지난 28일 3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이 예상되는 여름철 누진제 완화를 의결했다. 한전은 "한전이 내년 상반기까지 전기요금 개편 방안을 마련해 인가를 신청하면 정부가 법령에 따라 구체화할 것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여름철 전기요금 할인으로 생색을 냈지만, 한전은 재정부담이 심화될 상황에 처하자 정부에 전기요금 개편 청구서를 내민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한전이 요구하는 형태로 전기요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한전은 1일 공시를 통해 ‘주택용 누진제 및 전기요금 체계 개편 관련 사항’과 관련해 "국민의 하계 요금부담 완화와 함께 한전에 재무부담이 지속되지 않는 요금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전기요금 체계개편 방안을 내년 상반기까지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전은 지난달 28일 이사회를 열고 민관 태스크포스(TF)가 제시한 전기요금 개편 최종 권고안을 토대로 심의를 진행한 결과, 안건을 의결했다. 7~8월 여름철 누진제 구간이 확대되는 개편안은 요금 할증 구간을 기존 월 사용량 200kWh 이상에서 300kWh 이상으로, 두 번째 요금 할증 구간은 400kWh 이상에서 450kWh 이상으로 각각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개편안대로라면 한전이 연간 부담해야할 추정액은 지난해 기준 2847억원이다. 정부는 이날 전기위원회 심의를 통해 7월부터 전기요금 할인에 들어간다.

한전은 전기요금 체계개편과 관련해 크게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제도(전기 사용이 적은 경우 최대 4000원 할인) 폐지 혹은 수정보완 △누진제 폐지 혹은 국민 스스로 전기사용 패턴을 고려하여 다양한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전기요금제 등으로 개편 △국가적 에너지소비 효율을 제고하고 전기요금의 이용자 부담원칙을 분명히해 원가 이하의 전력 요금체계 현실화하는 안을 언급했다. 전기요금 약관개정 인가 신청을 위한 한전의 전기요금 개편안은 오는 11월30일까지 마련해 2020년 6월30일까지 정부의 인가를 받을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왼쪽에서 두번째)이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아직 세부 안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이날 한전이 언급한 개편안은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누진제가 폐지되면 사용한만큼 전기요금을 내 전기요금의 평균 단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이야기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원자핵공학과)는 "보조금이 수조에서 수십조원 투입되는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원전 등 값싼 기저를 줄이는데 전기요금을 안 올리는 것은 애초부터 말이 안되는 논리였다"며 "정부가 탈원전을 강행한 후 한전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전기요금을 올리는 '짜고치는 가격인상'"이라고 말했다.

현재 원가 이하로 공급되는 전기로는 농사용, 공공용 등이 있다.

김종갑 사장은 "콩(원료)이 두부(전기)보다 비싼 건 비정상"이라며 전기요금 체계 개편을 요구해왔다. 특히 한전 사장인 자신도 월 4000원의 보조금을 받는 필수사용공제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연초 기자들과의 만남에서도 "지난해 원가 이하로 판 전기가 4조7000억원 정도며 지난해 정부 정책비용은 2017년보다 1조2000억원 늘어난 6조원 가량"이라며 연말까지 '전력 도매가격 연동제(한전이 전력을 구매하는 도매가격에 연동해 전기요금 결정)'를 실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도 했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한전이 언급한 선택요금제는 스마트 미터 등 고객이 선택한 전기를 고객이 쓰는 것을 계량할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가능하다"며 "이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단순히 요금 인상을 위한 명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전이 언급한 전기요금의 이용자 부담원칙과 관련해서는 "원가회수율이 높은 산업용 요금 중 특정구간의 저요금만 선택 인상되어 산업용 전기요금이 인상될 가능성이 내포되었다"며 "개편안이 그렇지않아도 비싼 산업용 요금 인상에 악용되지 말아야한다"고 덧붙였다.

전기요금 개편이 전력시장 개방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동욱 중앙대 교수(에너지시스템공학)는 "전기요금 개편이 한전의 전자를 탈피하는 방향으로 이뤄질텐데, 결국 전기요금 인상이 없겠다고 한 정부가 한전의 요구를 들어주는 모양새로 전기요금을 올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번 기회에 한전이 독점으로 전력사업을 하는 구조에서 전력시장을 개방하는 구조로 나아다면 시장원리로 전력산업이 건전하게 발전할 것"이라며 "이 경우 에너지원 간의 갈등도 사라지고, 현재와 같은 이념에 의한 에너지정책보다 전력이 필요한 사용사가 발전사업자를 선택하면서 소비자 의견도 더 많이 반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