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알뜰폰 업체인 CJ 헬로는 지난 27일 온라인 쇼핑몰 지마켓애플의 리퍼비시(refurbish·중고 제품을 수리한 것) 아이폰7과 아이폰8을 팔기 시작했다. 아이폰 구매자는 CJ헬로의 알뜰폰 서비스인 헬로모바일에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 자급제폰이기 때문이다. 통신업체는 매월 받는 요금이 주(主) 수익 모델인데, CJ헬로는 이를 일부 포기하면서 단순한 스마트폰 판매 수익을 노린 것이다. 수년째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 신규 수익원 찾기에 악전고투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예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 2월에 LG유플러스에 매각 계약을 하고 현재 정부의 매각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라며 "그 사이에 자급제폰 판매 같은 사업 다각화로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올 들어 국내 알뜰폰 업계의 성장세가 꺾이고 있다. 한때 연간 100만명 안팎의 가입자를 끌어와 통신 시장의 한 축으로 급부상하던 기세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가 공개한 번호 이동 현황에 따르면 지난 5월 알뜰폰을 해지하고,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로 옮긴 사용자 수는 5만9462명이었다. 반면 통신 3사에서 알뜰폰으로 옮겨간 사용자는 3만6514명에 불과했다. 결국 2만여 명이 알뜰폰에서 통신 3사로 넘어간 셈이다. 벌써 13개월 연속 번호 이동 순감(純減)이다. 알뜰폰 업체 관계자는 "번호 이동은 서로 가입자를 빼앗는 구조이기 때문에 기존 가입자 수가 많을수록 불리해 알뜰폰이 순증하는 게 정상"이라며 "소비자가 알뜰폰을 외면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선불폰으로 근근이 버티는 알뜰폰

표면적인 숫자로만 보면 알뜰폰은 건재하다. 알뜰폰 가입자는 810여만 명(올 4월 기준)으로, 1년 전보다 36만명 정도가 늘었다. 하지만 요금제별 세부 숫자를 보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선불제 가입자가 이 기간에 41만명이 늘어난 반면, 후불제 가입자는 5만명이 줄었다. 선불제는 한 달이나 일주일 등 일정 기간 동안만 돈을 미리 내고 쓰는 요금제다. 가입자 대부분은 해외 관광객이나 외국인 노동자이고 수익률도 낮다. 통상 통신업체의 경쟁력은 후불제 가입자 수로 본다. 알뜰폰 가입자가 많아 보이지만, 선불제 요금제를 제외하면 436만명에 불과하다.

알뜰폰이 휘청이는 이유로 취약한 브랜드 파워와 기술 격차, 가격 경쟁력 약화가 꼽힌다. 알뜰폰 시장은 주로 에넥스텔레콤·아이즈비전 등 중소기업들이 주도하다 보니 마케팅도 거의 하지 않아, 브랜드의 인지도·신뢰도에서 통신 대기업에 밀리는 것이다. 대기업으로 CJ헬로가 있지만 뚜렷한 경쟁력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알뜰폰의 최대 장점이었던 가격 경쟁력도 예전만 못하다. 알뜰폰은 1만~2만원대 요금 상품이 주력이었는데 최근에는 통신 3사에서도 25% 요금 할인제를 활용하면 2만원대 상품이 적지 않다. 또 통신 3사는 초고속인터넷이나 인터넷(IP)TV와 이동통신을 묶어, 가족할인·결합할인과 같은 명목으로 추가 할인하는 경우가 많다.

올 4월부터는 기술 격차까지 생겼다. 통신 3사에선 5G(5세대) 이동통신을 내놨는데 알뜰폰에는 이 상품이 없다. 스스로 망을 구축하지 않고, 임대해 쓰는 알뜰폰은 통신 3사가 5G망을 임대해줘야 이 상품을 제공할 수 있다. 통신 3사는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은 5G망을 선뜻 알뜰폰 업체에 임대해주지 않으려 한다. 정부가 강제하지 않는 한, 연내 5G 알뜰폰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진출… 시장 반등의 계기 될까

40여 알뜰폰 업체들이 경쟁하는 시장에 오는 9월엔 KB국민은행이 진출한다. 고사 직전의 알뜰폰 업체로선 위협이자, 기회라는 시각이 교차한다. 당장 KB국민은행이 알뜰폰 가입자를 빼앗아갈 위험은 있지만, KB국민은행의 등장이 소비자에게 알뜰폰 이미지를 좋게 하는 효과도 있다. 또 KB국민은행이 통신 3사와 대등하게 5G망 조기 임대나 통신망 도매가 할인과 같은 협상을 할 수도 있다. 통신망 도매가격은 특정 업체를 우대하거나 차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민은행의 협상은 다른 알뜰폰 업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5G 조기 도입을 통해 안정적인 후불 사용자 확보에 실패하면 올해 이후 상당수의 알뜰폰 업체들이 휘청거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