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수 원인 '재무부실'…인수 후 부실정도 더 악화
"인수시장 효율적 낮아…기업인수 질적 확대 필요"

기업의 인수·합병이 기업의 가치를 높인다는 인식과 달리 우리나라의 인수·피인수 기업은 인수 후 재무적 부실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인수시장이 양적으로는 확대됐지만 시너지 확대, 효율성 개선 등을 유발하지 못해 질적으로는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1일 발간한 BOK경제연구 '기업인수의 재무적 성과: 한국의 사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기업인수의 가장 큰 이유는 피인수 기업의 재무적 부실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DB

한은이 2004~2017년 중 최대주주가 변경된 1379개 공시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피인수 대상기업 중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기업은 53%를 차지했다. 또 적자가 누적돼 자본잠식 상태인 기업은 61%,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충당하지 못해 이자보상배율이 1보다 작은 기업은 71%로 집계됐다.

연구진은 부실 정도가 심할 수록 인수 방식이 피인수기업에 불리하게 적용된다는 진단도 내놨다. 부실이 심한 피인수기업은 기존에 발행된 주식을 인수기업에 넘기는 구주방식보다 새로 주식을 발행해 인수기업을 최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신주방식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경우 피인수기업은 지배권 인수 시점에 기존에 보유한 주식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지 못해 재무 사정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 이는 인수 횟수가 많아질 수록 피인수 기업의 재무 부실이 심화되는 것과도 연관성이 있다.

조은아 한은 국제경제연구실 부연구위원은 "피인수기업의 재무적 부실이 심각할 수록 기업인수 발생 가능성이 높고 모회사의 재무적 부실도 자회사의 기업인수 가능성을 높이는 걸로 나타났다"고 했다.

기업 인수 후 재무성과는 피인수, 인수기업 모두 악화됐다. 인수 후 2년의 재무성과를 분석해본 결과 인수기업의 경우 총자산이익률(ROA)이 4.8%, 피인수기업은 4.9%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무부실을 해결하기 위한 기업인수가 피인수기업은 물론 인수기업의 재무상황까지 악화시킨다는 얘기다.

이는 우리나라의 기업인수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결과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재무적으로 건전한 기업들이 시너지를 추구하거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되는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조 부연구위원은 "기업인수의 양적 확대 뿐만 아니라 질적 확대에도 정책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며 "기업인수 후 기업의 부실이 더욱 악화되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구조조정 관련 법규, 금융지배 구조 등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