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경제정책과 성과가 당장은 체감되지 않을 수 있다. … 그러나 총체적으로 본다면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 '2019년 대한민국 중소기업인 대회' 축사에서)

정부는 그동안 우리 경제가 중장기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고 강변해왔다. 그러나 재계와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런 시각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반도체 수출을 걷어내고 성장률을 계산한 결과는 반도체 착시를 뺀 우리 경제가 얼마나 '빈약한' 상황인지를 보여준다.

◇반도체가 성장률 1%포인트 이상 좌우

KDI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 수출을 뺀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18년 1.4%, 2017년 2%에 그쳤다. 실제 성장률인 2.7%(2018년), 3.1%(2017년)보다 1%포인트 넘게 줄어든 수치다. 적어도 최근 2년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들이 성장률을 1%포인트 이상 책임졌다는 얘기다.

최근 6~7년간 호황을 누린 IT(정보기술) 산업도 반도체 효과를 걷어내면 하향세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에 따르면, 국내 8대 전자 산업 품목의 생산량은 작년 189조2000억원으로, 5년 새 규모가 약 20조원 늘었다. 이 기간 반도체와 반도체 소자 생산 규모는 56조원에서 126조원으로 2배 이상이 됐다. 하지만 TV·LCD(액정표시장치)·휴대전화 등 나머지 6개 품목은 이 기간 생산액이 50조원 줄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내에 공장을 둔 채 생산량을 늘린 반면, TV나 스마트폰은 공장을 멕시코나 베트남 등으로 옮긴 탓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반도체 이외 IT 산업의 해외 이전에 안일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업황이 반등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미·중 무역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와 미국의 화웨이 제재 등 악재(惡材)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미국의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지난 18일 "올 4분기로 예상했던 D램 가격 반등 시점은 내년 상반기로 늦춰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으로 1년간 불황이 이어진다는 의미다.

반도체 경기가 꺾이고 있는 여파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와 세수는 추락하고 있다. 성장률 전망치는 2%대로 떨어졌고, 4월까지 국세(國稅) 수입은 작년보다 5000억원 줄었다.

◇반도체 의존 분석해 구조개편 고민해야

그러나 정부에선 산업 전반의 구조 개혁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지난 19일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을 내놨지만, 알맹이도 없는 계획으로 소득 4만달러를 달성하겠다고 선포해 재계로부터 외면당했다.

KDI보다 우리 경제 구조를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한국은행은 "반도체가 좋으면 전체 경제 역시 상승세를 타고, 반대의 경우에는 악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며 팔짱을 끼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KDI의 분석에 대해 "(경제성장률에서) 반도체 생산용 장비 수입 감소와 설비투자 감소, 이에 따른 매출과 가계소득 감소, 고용 하락, 자영업 매출 등 도미노 효과를 정밀하게 따지는 작업은 간단치 않다"고 했다. 반도체에 편중된 경제에 대해 아무런 분석도 내놓지 않다가 수출 감소 효과만 따진 KDI의 분석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반도체 편중이 가져오는 충격과 문제점을 직시해 산업구조 개편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광두 미래전략연구원장은 "특정 산업에 너무 의존하면 경제가 안정적으로 가기 어렵다"며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 세수가 줄어 복지 지출에 대한 재원(財源)이 부족해지고, 국가 부채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노키아 쇼크' 반면교사 삼아야

우리나라의 반도체 편중 경제는 노키아에 과도하게 의존했던 핀란드의 몰락과 비교된다. 핀란드는 2000년대 초반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했던 노키아에 의존하다 노키아 쇠락 이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키아는 2008년 이후 스마트폰 등장으로 경쟁력을 잃고 침체를 겪다 결국 2014년 휴대전화 사업부를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에 완전히 매각했다.

핀란드 경제는 2012~2014년 마이너스 성장을 했고, 잠시 2%대 성장세로 올라섰지만 올해 다시 1%대로 추락할 것으로 보이는 등 노키아 충격에서 10년 넘게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정부가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위한 시스템을 시급히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