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 오일은 앞으로 몇 년간은 생산량이 늘어나겠지만, 이후에는 생산 비용 문제 때문에 전통 석유에 경쟁력이 뒤지게 될 겁니다."

아민 나세르 사우디 아람코 회장 겸 CEO(최고경영자)는 25일 서울 여의도의 아람코코리아 사무실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셰일 산업의 최근 몇 년간 생산량 증가를 보면 인상적"이라면서도 "셰일은 오프셋 비용(생산량 유지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아람코가 가진 가격 경쟁력을 따라올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사우디 등 중동 지역 유전은 한번 투자하면 생산량이 수십 년간 유지되지만, 미국의 셰일 유전은 평균 수명이 3년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중동 국가에 비해 생산 비용이 매우 높다. 나세르 회장은 회장에 오른 지 4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으며, 한국 언론 인터뷰도 이날이 처음이었다.

사우디 아람코는 세계 석유 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미국의 셰일 산업과 치열한 경쟁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셰일 혁명에 대해 평가를 부탁하자 나세르 회장의 얼굴에 주름이 깊어졌다. 사우디는 세계 경기 하강기였던 2014년 가을 시장의 예상과 달리 증산에 나섰다. 당시 알리 알 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원유 가격이 배럴당 20달러로 떨어져도 상관없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감산(減産)할 뜻이 없다"고 했다.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이상은 돼야 채산성이 맞는 걸로 알려진 미국 셰일 산업을 몰아내기 위해 저유가 경쟁을 감수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이후 유가는 20달러대까지 폭락했지만, 사우디의 의도와 달리 셰일 산업은 살아남았고, 미국은 작년에 세계 1위 산유국이 됐다.

아민 나세르 사우디 아람코 회장이 25일 서울 여의도 아람코코리아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1970년대부터 아람코의 원유 생산 시설을 건설하는 등 아람코와 한국은 43년간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고 말했다.

나세르 회장은 사우디 킹 파드대 석유공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아람코에 석유 생산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2015년 5월 사우디 개각 때 전임자인 칼리드 알 팔리가 보건부 장관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37년간 아람코에 재직하면서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한 지한파다. 그가 건넨 명함 뒷면에는 '아민 H. 나세르'란 한글도 적혀 있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한국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그는 "1981년 대학생 시절에 석유공학도로 해상 석유 생산 기지로 현장 실습을 나갔는데, 바다 위에 짓는 석유 생산 플랫폼 등 주변에 보이는 건 모두 한국 기업들이 짓고 있었다"며 "한국 기업들은 공기(工期) 내에 최고의 시설을 짓는 효율적인 기업들"이라고 했다.

"한국은 매력적인 투자처… 추가 투자할 것"

나세르 회장은 2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 왕세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에쓰오일 공장 확장 기념식에 참석한다.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중유 등을 가공해 휘발유 등 고가 제품으로 바꾸는 이 공장에 아람코는 5조원을 투자했다.

나세르 회장은 "한국은 투자하기에 매우 매력적인 국가"라며 "우수한 인력과 인프라 시설을 갖고 있고, R&D(연구개발)에서도 뛰어난 국가여서 투자자가 볼 때 훌륭한 투자 생태계를 갖고 있다"고 했다.

나세르 회장은 새로운 한국 투자 계획을 공개하진 않았다. 다만 그는 "26일 에쓰오일 준공식에서 추가로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힐 것"이라고 했다. 그가 언급한 에쓰오일의 신규 투자는 5조원을 들여 2023년까지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을 연간 150만t 생산하는 설비를 건설하는 계획으로 알려졌다.

아람코는 에쓰오일의 최대 주주인 동시에, 지난 4월 현대오일뱅크 주식 17%를 1조3750억원에 매입해 2대 주주에 올랐다. 아람코가 최근 지분 70%를 인수한 사우디 국영 석유화학업체인 사빅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은 2015년 고성능 플라스틱 넥슬렌 생산 합작사를 만들었다. 결국 아람코는 국내 4대 정유사 중 3곳과 직간접적 인연을 맺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와 수소 협력 논의

나세르 회장은 현대차와의 수소 분야 협력 구상을 밝혔다. 그는 "현대차는 수소 분야에서 권위 있는 회사이고,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회사"라며 "수소는 석유에서 추출할 수 있고, 아람코는 석유자원이 풍부한 회사여서 현대차와 함께 수소를 상업적으로 사용할 기회를 함께 찾으려고 한다"고 했다.

나세르 회장은 인터뷰를 마친 후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과 만나 수소 분야 협력 MOU(양해각서) 체결을 논의했다. 아람코는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수소 에너지 활용에 관심을 갖고 있다.

두 회사는 아람코가 수소 충전소 인프라망을 구축, 현대차의 넥쏘 등 수소차 보급을 확대하는 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중동 정세 불안과 관련해 나세르 회장은 "다양한 위기 대응책을 마련했다"며 "공급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는 "걸프전 때도 사우디는 모든 고객에게 안정적으로 석유를 공급했다"며 "이번에 만약 최악의 사태가 와서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된다 해도 사우디는 송유관을 통해 기름을 서쪽으로 보낸 뒤 홍해를 통해 수출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