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서울 오류동의 버려진 수녀원 건물이었다. 1965년 여름 '남성흥업'이란 간판을 걸고 손바닥만 한 휴대용 라디오를 만들었다. 독일 오디오 업체 크벨레(Quelle)가 이 제품을 보더니 "가격과 성능 모두 훌륭하다"며 총 2만대, 24만달러어치를 주문했다. 창업자 윤봉수 회장은 "지금 보면 조잡한 물건일지 몰라도, 당시 우리에겐 최첨단 제품이었다"며 "부산항에 첫 라디오를 실어 보내고 직원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수녀원에서 첫 라디오를 생산한 지 54년, ㈜남성은 세계적인 차량용 전장(電裝) 제품 전문 업체로 성장했다. 카오디오와 내비게이션, 인공지능(AI)이 결합한 첨단 '인포테인먼트' 기기가 주력 제품. 이 회사의 독자 브랜드 '듀얼(Dual)'과 '젠슨(Jensen)'은 지난해 미국에서 일본 파이오니어를 제치고 미국 카오디오 시장(대수 기준) 1위에 올랐다.

극한의 환경을 이겨내는 기술력

남성은 국내외 직원 100여 명 중 3분의 1이 연구개발(R&D) 인력이다. 세계 최대 전자 제품 박람회인 미국 CES에서 2010년과 2016년, 2018년 카오디오 부문 혁신상도 받았다. 이런 기술력은 1980년대까지 오디오와 비디오 분야의 다양한 전자 제품을 개발·생산하며 쌓았다. 일본 전자업체 크라운과 제휴하고 TV를 생산, 한국 기업 최초로 일본에 컬러 TV를 수출하기도 했다. 윤 회장은 "시장이 원하는 물건은 뭐든지 만들었다"면서 "그만큼 (기술에) 자신이 있었다"고 했다.

차량용 전장 제품 전문 기업 ㈜남성의 윤봉수(오른쪽) 창업자와 윤성호(왼쪽) 대표가 이 회사의 첨단 카오디오 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1965년 창업한 남성은 올해로 창업 55년째를 맞았다.

이 과정에서 발견한 '블루오션'이 바로 카오디오였다. 성장 잠재력이 컸지만 진입이 까다로웠다. 카오디오는 극한의 환경을 버텨야 하는 제품이다. 진동과 습기, 먼지, 땡볕 속 더위는 물론 한겨울 추위까지 모두 견뎌야 한다. 윤 대표는 "크기마저 작아 좁은 공간에 수많은 부품을 빽빽하게 배치해야 한다"면서 "조금이라도 허점이 있으면 제품 속 납땜이 떨어지고, 녹이 슬거나 부품이 상하기 일쑤"라고 했다.

남성은 기술적 난제를 철저한 설계와 공정 관리로 극복했다. 디자인부터 제조까지 전 과정에서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품질 원칙을 우직하게 지켰다. 윤 대표는 "단 1㎜, 1g도 줄이거나 아끼지 않고 오직 원칙대로 만들었다"고 했다. 남성이 만든 카오디오는 포드도요타 등 세계적 자동차 업체들이 채택했다. 1976년 대한민국 첫 해외 수출차인 포니에 들어간 카오디오도 남성의 제품이었다.

구글·애플·아마존과 차세대 제품 개발

남성은 1990년대까지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과 제조자개발생산방식(ODM)으로 제품을 생산했다. 그러다 2003년 '자체 브랜드'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윤 대표는 "OEM·ODM으로는 중국의 저가 업체와 일본 고급 브랜드 사이에서 성장의 한계가 분명했다"면서 "기술력 하나를 믿고 해외 고급 브랜드와 승부를 펼치기로 했다"고 말했다.

승부처는 미국이었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남성은 월마트, 오토존 등 대형 매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합리적 가격에 성능과 내구성을 갖춘 남성의 카오디오에 열광했다. 윤 대표는 "자체 브랜드 진출 첫해 10여 만대에 불과했던 제품 판매량이 다음 해에는 2배로, 그다음 해엔 4배가 됐다"고 했다.

브랜드 인지도와 시장점유율이 껑충 뛰어오르면서 남성은 미국 구글과 애플, 아마존 같은 세계적 테크 기업도 주목하는 기업이 됐다. 남성은 첨단 AI(인공지능) 비서와 자율 주행 기능까지 접목한 차세대 전장 제품을 내놓기 위해 이 기업들과 협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