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중국 시장에서 계속되는 판매 부진에 고심하고 있다. 지난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보복 조치가 끝난지 1년여가 지났지만, 최근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오히려 더욱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현대차는 팰리세이드, 신형 쏘나타 등 신차를 잇따라 선보이며 국내 판매가 크게 증가했다. 미국에서도 SUV를 중심으로 라인업을 재편하며 반등에 성공했다. 그러나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판매 부진이 길어지면서 전체 글로벌 판매량은 감소하고 있다. 한 때 현대차의 고속성장을 이끌었던 중국 시장이 이제 전체 판매량을 끝모를 부진으로 몰아넣는 ‘블랙홀’로 전락한 셈이다.

◇ 사드 보복 끝났지만…올해 누적 판매량, 지난해보다 26% 줄어

19일 현대차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달 현대차의 중국 합작법인 베이징현대차의 판매량은 3만6035대로 전년동월대비 40.4% 급감했다. 올들어 5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21만7136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9% 감소했다.

현대차 관계자들이 지난해 11월 열린 중국 광저우모터쇼에서 중국형 신형 싼타페 ‘셩다’를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고 있다.

현대차의 2월 중국 시장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8% 늘어나며 잠시 반등하는듯 했다. 그러나 3월 들어 다시 8.9%, 4월에는 28.5% 감소하며 날이 갈수록 부진이 심화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2017년 사드 배치로 중국에서 한국제품 불매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2017년말 한국과 중국 정부가 사드 보복을 끝내기로 합의했지만, 지난해 판매량은 79만177대로 2017년 판매량 78만5006대에 비해 고작 0.7% 늘어나는데 그쳤다. 올들어서는 지난해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판매가 줄어들면서 현대차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말 국내에서 대형 SUV 팰리세이드, 올해 4월에는 신형 쏘나타를 각각 선보였다. 신차 효과에 힘입어 올들어 5월까지 현대차의 국내 시장 누적판매량은 전년동기대비 9.6% 증가했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판매 부진으로 인해 같은 기간 전체 글로벌 판매량은 4.4% 줄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최근 중국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유로 과거에 비해 애매해진 자동차 시장에서의 위치를 꼽는다. 독일차, 일본차 등에 비해 한 단계 낮은 브랜드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최근 중국 현지 자동차 업체들이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품질까지 개선해 치고 올라오면서 중간에 낀 현대차가 외면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중국에서의 판매 부진이 계속되면서 지난 4월 베이징 1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사진은 현대차 베이징3공장에서 조업하는 근로자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으로 중국의 전체 자동차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점도 현대차의 판매량이 크게 감소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12일(현지시각) 중국자동차제조협회(CAAM)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의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동기대비 16.4% 감소했다. 지난 3월 -5.2%, 4월 -14.6%로 감소 폭이 매달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新시장 개척에 사활 건 현대차…美에선 ‘카를로스 곤 인맥’ 잇따라 영입도

중국 시장에서의 판매 부진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현대차는 실적 방어에 비상이 걸렸다. 현대차그룹 일각에서는 연초 제시한 글로벌 판매 목표치 468만대를 달성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최근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대안이 될만한 신(新) 시장을 개척하는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미 인도네시아에서는 연간 생산량 20만대 규모의 완성차 공장 설립을 준비 중이며 베트남 등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인도에서도 현지 최대 차량공유업체인 올라에 3억달러를 투자하는 등 현지에서의 공급량을 늘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현대차는 수소전기차 넥쏘 등 친환경 모델을 앞세워 지난 2009년 철수했던 일본 시장에서도 다시 승용차를 판매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대형 SUV 팰리세이드의 미국 출시를 앞두고 최근 경쟁사인 닛산 출신 판매담당 임원들을 잇따라 영입하며 미국에서의 판매량 확대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미국 시장에서의 판매량을 늘리는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달 초 닛산의 북미법인장 출신인 호세 무뇨스 사장을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임명한데 이어 역시 닛산에서 고급브랜드 인피니티의 판매를 책임졌던 랜디 파커 판매담당 부사장을 영입했다. 두 사람은 모두 올 초 자리를 떠난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의 측근으로 불렸던 인물들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중국 현지 업체들의 성장과 최근 성장률이 꺾인 중국 자동차 시장의 상황 등을 고려해 볼 때 현대차의 중국 시장 판매량이 과거와 같은 수준으로 회복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중국에서의 부진이 새로운 유망지역 판로 개척과 차량공유 등 미래 신사업 재편 등을 가속화시키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