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혈액 속 체액만으로 암을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혈액에서 혈장을 분리한 뒤 혈소판막으로 구성된 칩(Chip) 위에 올리면 암세포 정보를 갖고 있는 특정 나노소포체만을 포획해 진단하는 방식이다.

조윤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첨단연성물질 연구단 그룹리더 연구팀은 최근 혈장에서 나노소포체를 포획해 암을 진단할 수 있는 혈소판 칩을 개발했다고 20일 밝혔다.

나노소포체는 세포들이 서로 자신의 세포 정보를 담아 서로 소통하는 일종의 편지와 같은 존재다. 암 세포 역시 이 나노소포체를 갖고 있어 일반 세포와 암 세포를 구분할 수 있는 표지인자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나노소포체만을 선택적으로 분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혈장 속에서 바로 암 세포의 나노소포체를 구분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분리·농축 등 전처리 과정이 필요했다.

이에 최신 암 진단 방식은 암 세포와 결합하는 특이 항체를 통해 나노소포체를 검출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 경우 각 암종별마다 항체를 별도로 만들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번에 개발된 혈소판 칩은 전처리 과정이 필요하지 않고, 다양한 암종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연구진은 암세포가 몸 속에서 정체를 숨기기 위해 혈소판에 둘러싸인 형태로 혈액 속에서 이동한다는 사실에서 이같은 진단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진은 마이크로미터 지름 크기의 미세한 관 안 바닥부위에 혈소판 세포막을 고정한 칩을 만들었다. 암세포가 혈소판에 숨는 성질을 이용해 칩의 표면에 결합할 수 있도록 덫을 놓은 셈이다.

실제 이 혈소판 칩을 이용해 암 환자 대상 실험을 진행한 결과, 혈장 1마이크로미터만으로 암 환자의 혈장에서 정상인과 다른 다량의 나노소포체가 검출됐다. 혈소판 칩에 검출된 나노소포체의 양에 따라 몸 속 암세포의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조윤경 그룹리더는 "이번 연구는 체내 혈소판-암세포 친화력을 모방해 암세포에서 나온 나노소포체를 검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복잡한 처리 없이 혈장을 그대로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극소량 샘플로부터 암세포 유래 나노소포체를 검출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티리얼즈(Advanced Functional materials, IF 13.325)’에 5월 27일자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