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페이스북이 내년에 독자 가상 화폐 '리브라(Libra)'를 발행한다. 전 세계 30억명 이상의 페이스북 메신저와 와츠앱 이용자들이 쓸 수 있는 가상 화폐가 등장하는 것이다. 현행 종이 화폐 중심의 경제·산업 구조를 바꿀 잠재력에 세계 금융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18일(현지 시각) 페이스북은 "내년에 이용자가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송금하거나 상품 결제를 할 수 있는 리브라를 발행한다"고 밝혔다. 리브라는 달러나 채권과 같은 현실 자산과 액면 가치가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이다. 가상 화폐의 약점인 심한 가격 변동성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을 택했다. 이에 비자카드·마스터카드와 같은 금융 기업부터 우버·리프트·이베이 등 테크 기업들까지 페이스북의 리브라 진영에 참여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리브라의 성공은 기존 금융 산업의 재구축과 은행·핀테크 업체들의 붕괴를 뜻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실생활 침투하는 가상 화폐…1초에 1000건씩 거래 가능

지금까지 가상 화폐는 느린 거래 처리 속도 때문에 통화 화폐로서 활용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비트코인은 1초당 약 7건의 거래를 처리할 수 있고, 속도를 개선한 이더리움도 초당 15건을 처리한다. 현재도 비트코인으로 상품을 살 수는 있지만, 결제가 몰리는 시간대에는 결제 시간이 길게는 5~10분씩 걸린다. 리브라는 다르다. 페이스북은 "서비스 초기엔 초당 1000건의 거래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향후 속도를 지속해 높이겠다"고 밝혔다. 가상 화폐 업계 관계자는 "리브라의 빠른 결제 속도가 가상 화폐의 통화 대체라는 도전의 가장 강한 무기"라고 말했다.

리브라의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페이스북 메신저와 와츠앱에는 리브라를 저장하는 전자지갑 '캘리브라' 기능이 추가될 예정이다. 이용자는 리브라를 구매해 전자지갑에 저장하고, 클릭 몇 번으로 메신저에 등록한 친구에게 가상 화폐를 전송할 수 있다. 카카오톡에서 카카오페이를 통해 지인에게 송금하는 것과 비슷하다. 식당이나 마트에서 결제할 때는 메신저 앱에 뜨는 지불 코드를 스캔하면 된다. 기존 금융 체제의 복잡한 결제망을 거치지 않아, 수수료도 거의 없다. 페이스북은 "커피를 사거나, 대중교통을 타는 데도 리브라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페이스북은 내년부터 리브라의 운영을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리브라 협회'로 넘긴다. 비자카드·마스터카드 등이 포함된 이 협회에는 현재 페이스북을 비롯한 28개 업체가 등록했고, 내년까지 100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리브라 협회의 회원 기업들이 자사의 현금이나 채권을 협회에 준비금으로 맡기고, 같은 금액만큼의 리브라를 받아 사용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리브라 경제권과 같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자, 세계 최대 송금 업체인 웨스턴 유니언도 페이스북과 협업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화폐 질서 붕괴 우려…반대 목소리 쏟아져

페이스북이 이런 리브라 계획을 발표하자마자, 기존 금융권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이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는 "페이스북이 암호 화폐 발행 계획을 내놓자마자 세계 금융 당국은 이에 대한 정밀 조사를 예고하고 나섰다"며 "페이스북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18일 맥신 워터스 미국 하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페이스북은 리브라 개발을 일시 중단하라"며 "페이스북이 또 한 번 검증되지 않은 확장을 단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소속 셰로드 브라운 의원도 "페이스북이 위험한 가상 화폐를 아무런 감시 없이 운영하도록 둘 수 없다"며 "금융 당국이 이를 면밀하게 조사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재무장관 브뤼노 르메르는 유럽의 한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오직 정부만이 법정 통화를 발행할 수 있다"며 "리브라는 주권 통화가 될 수 없으며, 그런 일은 일어나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마크 카니 총재 역시 "G7과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 금융안정위원회(FSB) 등 다국적 국제기구와 함께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스테이블코인(stablecoin)

화폐를 포함한 실물경제의 실제 자산과 연동해 가격 변동 폭을 줄인 가상 화폐다. 예컨대 1코인의 가치를 1달러로 고정하는 방식이다. 1코인을 발행하려면 1달러를 준비금으로 보유해야 한다. 페이스북의 리브라는 달러뿐만 아니라 참여 회사의 채권 등을 섞은 ‘실물 자산’의 가치와 연동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