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연희교차로에서 궁동공원 방향으로 큰 길을 따라 300m쯤 걸어가자 차량 한 대가 겨우 오갈 만한 너비 5m 비좁은 골목이 나타났다. 요즘 '뜨는 동네'로 주목받는 이곳엔 지상 2층짜리 상가주택이 줄지어 있었다.

골목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외관이 독특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 벽돌로 된 낡은 2층 주택과 현대식 콘크리트 2층 건물이 나란히 서 있었다. 특이한 점은 두 건물이 계단과 다리로 이어져 있다는 것. 이 건물은 큰길에서 떨어진 후미진 골목인데도 카페·스튜디오 등으로 꽉 들어차 빈 공간이 없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재생 건축 공법으로 리모델링한 지상 2층 상가주택. 낡은 벽돌로 지은 단독주택 마당이 있던 곳에 철근 콘크리트로 새 건물을 올리고 두 건물을 계단과 공중 다리로 연결했다.

이 건물을 기획한 김종석 쿠움파트너스 대표는 "최근 유행하는 재생(再生)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라며 "옛것을 남겨둔 채 기존 건물과 조화를 이루도록 증축해 공사비는 줄이고 세입자와 건물주 만족도는 최대한 높였다"고 했다.

◇"나쁜 입지를 극복하는 재생 건축… 공사비도 저렴"

이 건물은 원래 마당이 있는 평범한 지상 2층 단독주택이었다. 대지면적은 283㎡. 건물주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주택을 증축해 근린생활시설로 용도를 바꿀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입지가 좋지 않았다. 대로변이 아닌 후미진 골목이었던 것. 고민하던 건물주는 연희동 일대에서만 70여 개의 건물을 리모델링한 김 대표를 찾았다. 김 대표는 "연희동처럼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은 구석진 입지여도 손님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면서 "다만 임대료가 싸고 불리한 입지를 보완할 수 있는 건물 자체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재생 건축을 제안했다. 기존 건물은 헐지 말고 비어 있던 마당에 건물을 증축하는 아이디어였다. 재생 건축은 건축비가 저렴하다. 실제 연희동 건물 재생에는 4억7500만원이 들었다. 신축의 60%에 불과하다. 그만큼 임대료도 낮출 수 있다. 재생 건축은 신축 건물보다 눈에 확 띄고 옛것에 대한 감성을 자극해 손님 유치에도 유리하다.

◇7개 점포가 한눈에… '열린 설계'

이 건물은 멀리서도 눈에 띈다. 기존 벽돌집 외관은 그대로 살리면서 마당에 철근 콘크리트로 새 건물을 올려 확연히 대비되는 건물을 만들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두 건물을 계단과 다리로 이어 하나처럼 보이도록 했다. 건물 밖에서는 모든 점포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차별화된 설계는 또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중정(中庭)을 만들고 반지하층부터 2층까지 건물 외벽에 계단을 만든 것. 새 건물과 기존 건물을 잇는 공중 다리 덕분에 모든 점포가 테라스형 상가처럼 탁 트인 개방감을 확보했다. 증축한 건물은 경사 지붕 형태로 만들고 기존 건물보다 층고를 더 높였다.

◇모든 임차공간을 대로변 상가 1층처럼

김 대표는 반지하 공간에도 마법을 부렸다. 일반적으로 반지하는 세입자에게 인기가 떨어진다. 이 건물은 다르다. 반지하라도 출입구 앞에 마당 같은 공간을 만들어 1층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김 대표는 옛 건물의 외부 마감을 거의 건드리지 않았다. 건물 구조만 보강하고 노후한 부분만 살짝 손봤다. 증축한 건물이 튀어 보이지 않도록 색깔은 회색 등 무채색을 주로 썼다.

독특한 디자인과 열린 설계 덕분에 이 건물은 층별 임대료에도 큰 차이가 없다. 점포 7개에서 받는 월 임대료는 1005만원, 연간 1억2000만원이다. 일반적인 상가와 별 차이가 없다. 주택 구입 비용과 공사비, 보증금 등을 감안한 순수 투자비는 11억8500만원. 투자 수익률은 연 10%로 서울 평균(5~6%)보다 배 가까이 높다. 김 대표는 "신축 건물은 준공 후 6개월쯤 지나야 세입자를 모두 맞추는데 이 건물은 3개월 만에 모두 채웠다"고 했다.

최근 화려한 신축보다 재생 건축을 선호하는 임차인들이 늘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김 대표는 "디자인이 뛰어난 신축 건물이라도 오래된 건물이 가진 특유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흉내 낼 수 없다"며 "옛것의 가치와 효율성을 모두 갖춘 재생 건축이 대세"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