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 시각) 미국 로봇 회사 누로(NURO)가 새로운 소식을 발표했다. 도미노피자와 손잡고 피자 무인 배달에 나선다는 내용이었다. 배달용 무인 차량을 만드는 누로는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10억달러(약 1조1800억원)를 투자받은 회사다.

우버가 드론을 이용해 오는 8월 맥도널드 제품을 배달하겠다고 밝히며 공개한 이미지. 햄버거가 내려오는 모습을 합성했다.

글로벌 식품업체들이 앞다퉈 무인 배달 실험에 나서고 있다. 한국에선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무인 배달 실험은 단순히 연구원들의 아이디어 차원에 머무는 게 아니다. 당장 올해 안에 현장에 적용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배달 기사라는 직업이 조만간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다.

너도나도 무인 배달에 올인

미국에선 음식 배달 시장이 쑥쑥 크고 있다. 최근 투자회사 코웬은 미국 내 음식 배달 산업이 매년 12%씩 성장해 2022년 760억달러(약 90조1700억원)까지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추세에 맞춰 식품업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배달 강화 전략을 짜내고 있다.

글로벌 식품업체들이 고심 끝에 내놓은 배달 강화 전략이 무인 배달이다. 늘어나는 배달 수요에 맞춰 배달 기사를 고용하는 건 비용적인 측면에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무인 배달은 장비 구입비를 제외하면 인건비도 들지 않고, 배달 기사의 사고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도미노피자는 일찌감치 무인 배달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자동차 회사 포드와 함께 무인 배달 차량 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2016년에는 뉴질랜드에서 드론을 이용한 피자를 배달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이번에 누로와 손잡으며 실험 단계를 한 차원 끌어올렸다. 도미노피자는 당장 올 9~10월쯤에 미국 휴스턴에서 누로의 무인 배달 차량을 이용해 피자를 고객의 집으로 배달할 계획이다. 일반 자동차의 절반 크기인 누로의 무인 배달 차량에는 운전석이 따로 없고, 모든 공간에 피자를 실을 수 있다. 고객이 온라인으로 피자를 주문하면 매장에서 완성된 피자가 이 무인 차량에 실려 고객의 집 앞까지 최대 시속 40㎞로 이동한다. 고객은 문 앞에 도착한 무인 차량으로 가 도미노피자로부터 받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피자를 꺼내면 되는 식이다.

도미노피자뿐 아니다. 우버맥도널드와 함께 햄버거 배달 실험에 나선다. 이 또한 코앞의 현실이다. 우버의 드론 택시 부문인 우버 엘리베이트와 음식 배달 사업 부문 우버이츠는 올 8월에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드론으로 맥도널드 제품을 배달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도미노피자의 라이벌인 피자헛은 지난 2월 택배업체인 페덱스의 배달 로봇을 이용해 피자를 배달하는 실험을 하겠다고 밝혔다. 페덱스가 개발한 배달 로봇은 몸통에 피자를 담고 신호등, 장애물 등을 파악해 목적지까지 이동한다. 피자헛은 일본 자동차 업체 도요타와 무인 배달용 차량 개발도 협업하고 있다.

"배달 기사, 조만간 과거 유물 될 것"

도미노피자와 손잡은 누로는 "무인 배달 차량은 일반 배달보다 더 빠르다"고 주장한다. 우버는 "1.5마일(약 2.4㎞) 떨어진 거리까지 배달하는 데 지상 운송은 평균 21분 걸리지만, 드론을 이용하면 약 7분 만에 배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객 입장에서 보자면 사람 대신 무인 차량, 드론 등이 배달을 오는 건 별다른 차이가 없는 일일 수 있다. 배달원에게서 물건을 받고 사인을 해주는 것이나, 무인 차량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물건을 받는 것이나 어느 것이 더 편리하고 불편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피자를 만들면서 배달가요 - 피자헛은 도요타와 무인 배달 차량 개발을 함께하고 있다. 로봇이 배달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피자를 만드는 트럭도 함께 만들었다.
배달원도 운전자도 없어요, 도미노 피자 배달 차량 - 오는 9~10월 미국 휴스턴 지역의 피자 마니아들은 이 차량이 배달하는 도미노피자를 맛볼 수 있게 된다. 일반 승용차의 절반 크기인 이 무인 배달 차량에는 운전석이 별도로 없다. 이 차량을 개발한 누로(NURO)는 지난해부터 수퍼마켓 체인 크로거와도 무인 배달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무인 배달은 직업 한 가지를 없앨 수 있는 파급력을 갖고 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미국에서 배달에 종사하는 사람은 142만1400명(2016년 기준)에 달한다. 이들의 평균 연봉은 지난해 3만500달러(약 3600만원)로 집계됐다. 식품업체를 중심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무인 배달 실험이 별문제 없이 정착할 경우 배달 기사라는 직업이 존폐 위기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가 도미노피자의 무인 배달 실험을 보도하며 "배달 기사는 조만간 과거의 유물(relic)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이유다. 무인 배달의 최전선에 있는 누로는 홈페이지에 이렇게 명시했다. "무인 배달이 지역 상업을 통째로 바꿀 것이다."

[美 대학생들 아침식사, 이미 로봇이 배달중]

미국 노던애리조나대, 조지 메이슨대 학생들에게 무인 배달은 미래가 아니다. 현실이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캠퍼스 내에 있는 스타벅스, 던킨 등에 아침 식사를 주문하면 로봇들이 배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조지 메이슨대학 졸업생이 아침 식사를 배달하는 로봇 곁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미국 로봇 스타트업 스타십 테크놀로지스는 지난 1월 조지 메이슨대에 무인 배달 로봇 25대를 배치했다. 아이스박스에 바퀴 6개를 붙인 모양인 이 로봇은 323만7485㎡(약 98만평)의 캠퍼스를 누비며 학생과 교직원들이 주문한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학생들의 주문이 접수되면 식당 직원들이 이 로봇에 음식을 넣는다. 뚜껑이 닫히는 동시에 로봇이 주문자가 원하는 곳을 향해 보도를 따라 시속 6㎞로 이동하는 식이다. 배달 시간은 통상 15분 정도로, 학생들은 자기가 시킨 음식이 어디쯤 오고 있는지 앱으로 볼 수 있다. 배달비는 1.99달러(약 2300원)다.

스타십 테크놀로지스는 "아침을 거르는 학생이 88%에 달했지만, 배달 로봇이 투입된 뒤 이 수치가 확연히 줄고 있다"고 자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