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지 업계가 최근 상품 배송용 상자를 만드는 골판지 수요가 급증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의류나 책뿐 아니라 신선식품, 전자제품, 가구 등 온갖 상품이 집으로 배송되는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고 그만큼 포장 박스가 많이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한 골판지 제조 업체가 인수·합병(M&A) 매물로 나오자 국내외 제지 업체들이 앞다퉈 몰리며 뜨거운 인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 상위 5개 골판지 제조 업체의 매출액 합계는 2017년에 전년 대비 22%, 2018년에 전년 대비 16% 성장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 거래액은 113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0.8% 늘었고 올해는 시장 규모가 130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 제지 업계 관계자는 "인쇄 시장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제지 산업 전반에 위기감이 팽배했지만, 전자상거래 활성화로 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며 "책 종이가 아닌 택배용 종이 상자가 제지 업계의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1위 골판지 제조 업체 인수에 10여 개 업체 몰려

지난 12일 마감된 골판지 제조 업체 태림포장과 계열사 태림페이퍼의 M&A 예비 입찰에 국내외 제지 업체와 사모펀드 등 10여곳이 참여했다. 국내 1위 제지 업체인 한솔제지를 비롯해 골판지 제조 업체인 신대양제지아세아제지 등 국내 업체뿐 아니라 중국 제지 업체 샤닝, 미국 1~2위 제지 업체인 인터내셔널 페이퍼 웨스트락 페이퍼, 글로벌 사모펀드 TPG 등이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5년 태림포장 지분 58.9%와 태림페이퍼 지분 34.54%를 약 3500억원에 인수한 사모펀드 IMM프라이빗에쿼티(PE)김앤장모건스탠리를 자문사로 선정해 매각 작업을 벌이고 있다. 골판지 사업은 골판지 원지를 제조하는 원지 제조 업체와 원지로 골판지 상자를 제조하는 골판지 상자 업체로 나뉜다. 태림페이퍼가 골판지 원지 시장에서 24% 점유율로 1위이고, 태림상자가 골판지 상자 시장에서 19%로 2위다. 이번에 태림포장과 태림페이퍼가 한 번에 매물로 나왔다.

국내외 제지 업체들이 태림포장 인수에 군침을 흘리는 이유는 최근 수익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3779억이었던 태림포장의 매출은 지난해 6087억원까지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357억원으로 전년보다 10배 이상 늘었다. 태림페이퍼 매출도 같은 기간 3131억원에서 4829억원으로 54%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214억원에서 884억원으로 313% 늘었다. 태림포장뿐 아니다. 한솔그룹 계열사인 한솔페이퍼텍도 영업이익이 2017년 9억원에서 지난해 98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처럼 골판지 제조 업체의 수익성이 좋아진 데에는 중국이 환경 정책 일환으로 폐지 수입을 2020년까지 완전 금지하겠다고 밝힌 것도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골판지는 폐지를 원료로 만드는데 중국 수출길이 막히자 국내에 폐지 공급량이 늘어 골판지 제조 업체가 싼 가격에 폐지를 구입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태림포장·태림페이퍼 인수 대금이 1조원에 달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제지 업계, 골판지 사업이라는 금광 발견"

해외에서도 천문학적인 금액에 골판지 제조 업체가 인수·합병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아마존 협력 업체인 영국 상자 제조 업체 DS스미스가 스페인 골판지 상자 제조 업체인 유로팩을 19억유로(약 2조5300억원)에 인수했다. DS스미스는 유럽 2위 상자 제조 업체다. 또한 지난해에는 유럽 최대 상자 제조 업체인 스머핏카파가 미국 인터내셔널 페이퍼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기도 했다.

시장 조사 업체 스미더스피라에 따르면 지난해 8790억달러(약 1040조원) 규모였던 전 세계 포장 산업은 2022년까지 매년 평균 2.9%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플라스틱·스티로폼 포장이 환경 파괴 주범으로 꼽히면서 종이 상자의 가치는 더 높아지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폐광 취급을 받던 제지 업계가 골판지 사업이라는 금광을 발견한 것과 같은 모습"이라면서 "현재 유통업은 딜리버리(배달)로 요약할 수 있기 때문에 골판지 제조 업체의 기업 가치는 계속 커질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