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세운청계상가 주변 철재골목에 있는 금속 가공·절단업체.

"최저임금, 근로시간 관련 정책은 획일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중소기업의 실정에 맞춰 유연하게 펼쳐야 한다."(이동기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중소기업이 노동비용 증가를 우려해 고용을 줄이거나 투자 결정을 미루고 있다. 정부의 경제정책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중소기업이 안팎에서 고전하고 있다. 올 1분기 중소기업 제조업 생산은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4.5% 줄었다. 수출 역시 상황이 녹록치 않다. 올 1분기 중소기업 수출은 28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4% 줄었다.

올 1분기 창업 기업 수는 32만1748개로 지난해 1분기보다 12.1% 줄었다. 뿌리산업으로 불리는 기계·금속 등 제조 분야 창업 기업 수 감소(1197개, 7.6%)가 두드러졌다. 중소 제조기업이 집결한 전국 37개 공단의 올 1분기 공장 가동률은 77.4%다. 수익을 낼 수 있는 최저 공장 가동률(80%)에도 못 미친다.

17일 조선비즈는 중소기업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지난 2년간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 평가를 실시했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에 대해 100점 만점에 평균 59점의 점수를 줬다. 공통적으로 꼽은 문제점은 최저임금 제도로, 경기침체 속에서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이 중소기업의 경영상황을 악화시켰다고 봤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 속도조절에 나서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 중소기업 10곳 중 4곳 ‘적자’…"더이상 버틸 힘 없어"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올 4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연 매출 1000억원 미만 중소기업 746곳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017년 대비 46.4%나 감소했다. 지난해 적자를 낸 중소기업이 42%(311개)에 달했다. 적자 중소기업 수는 2016년 255개, 2017년 300개에 이어 계속 늘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말하는 경영난의 주요 요인은 내수 부진과 인건비 상승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중소기업 정책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했다. 중소기업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정책 추진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성태윤 교수는 "자동차·조선 등 주력 제조업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비용 충격까지 더해져 체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이 더이상 버틸 힘이 없다"며 "정부가 경제정책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했다. 성 교수는 또 "중소기업이 노동비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판단, 고용을 줄이거나 투자 결정을 미루고 있다"며 "비용 상승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김세종 아셈중소기업친환경혁신센터 부이사장(전 중소기업연구원 원장)은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정책 방향이 옳다고 해도 중소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밀어붙인다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다"고 했다.

내년부터 종업원 50인 이상 300인 이하 기업에 주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된다. 전문가들은 줄어든 근로시간을 보완하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현행 3개월)을 9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중소기업계의 주장에 동의했다. 기업이 해당 직무 근로자 대표와 협의해 결정할 수 있도록 요건도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동기 교수는 "최저임금, 근로시간 관련 정책은 획일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중소기업 실정에 맞춰 유연하게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 원장은 "주 52시간 근로제는 일자리를 늘리기보다 일자리 감소라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숙련공을 많이 고용한 중소기업의 경우 신규 인력으로 대체할 수 없다. 근로자 간의 능력차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라고 했다.

◇ 공정경제 구현 신중해야…"대기업 일방적 희생은 부작용만"

정부는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2017년 7월 중소기업청을 장관급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시켰다. 하지만 중소기업계에선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했지만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데 집중하다보니 정작 주 업무인 중소기업 육성 정책은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달 31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상생과 공존을 위한 공정경제 업무협약식’을 열었다. 왼쪽부터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올 4월 9일 취임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대해선 의지는 강하지만,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박 장관은 공정경제를 강조하며 "중소기업 기술탈취 등 불공정거래를 개선하기 위해 ‘상생협력중재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상생협력중재위원회는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거래하며 기술탈취 등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분쟁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일방적으로 대기업의 희생만 강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거래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공정경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은 중요하다"면서도 "어떻게 부작용을 줄이면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 추진과 관련해 컨트롤타워 역할 주문도 나왔다. 최용록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여러 부처에 산재된 중소기업 정책을 한 데 모아 정책 효율성을 높여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 제2 벤처 붐 조성…"자금 지원으로 끝나면 성공 못해"

중소·중견 기업 1만797개사가 입주해 있는 경기도 시흥시 시화산업단지.

정부가 추진 중인 ‘제2 벤처 붐’ 정책과 관련해선 돈만 쏟아부어서는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정부는 2022년까지 12조원 규모의 ‘스케일업(외형 성장)’ 펀드를 조성해 제2 벤처 붐을 조성하는 동시에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조원 이상인 비상장 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김세종 부이사장은 "제2의 벤처 붐 확산 등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은 단순히 자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며 "철저한 현장 모니터링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중소·벤처기업 대상 인재 육성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결국 혁신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며 "독일과 일본의 중소기업처럼 국내 중소기업도 직원이 일할수록 명장, 고수로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헌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소기업에서 기술과 경험을 쌓은 인력들이 자신의 사업을 할 수 있는 창업 지원 프로그램도 고려해 볼만 하다"고 말했다.

※ 도움주신 분들(가나다순) :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 김경만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 김세종 아셈중소기업친환경혁신센터 부이사장,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 원장, 이동기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 이병헌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최용록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