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조선]
1차 세계대전 교훈 거울 삼아야
미국 경제 해답 미국에 있어
양국 금융 정책 유연성도 변수

로런스 서머스(Lawrence Summers) 하버드대 경제학박사, 미국 재무장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하버드대 총장

"무역전쟁이나 기술의 주도권에서 미국이 중국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중국을 필요 이상으로 압박하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중국을 돕는 꼴이 될 수 있다. 중국으로선 자체 서플라이 체인(공급망) 구축과 독자적인 기술 개발을 서두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대계 미국인인 로런스(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석좌교수와 함께 미국 경제학계가 배출한 ‘3대 수퍼스타’로 불린다. 16세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조기 입학했고, 27세에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이듬해인 1983년 하버드대 역사상 최연소 종신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냈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역임했다. 재무장관 시절에는 금융권 규제 완화와 자본 확충 등에 주력했고, NEC 위원장 시절에는 자동차 산업 지원 정책을 펼쳐 죽어가던 미국 자동차 기업 GM과 크라이슬러를 살려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6월 3일 밤(현지시각)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하버드대학 사무실에 있는 서머스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행 중 사고로 다리를 다쳐 재활 치료 중이라고 했다. 안부를 걱정하니 괜찮다고 하면서 나라 걱정부터 한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총성 없는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는 미·중 갈등이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서머스 교수는 올해 초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칼럼에서 "앞으로 2년 안에 세계적인 차원의 경기 침체가 올 가능성이 있다"며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는 더 적극적으로 부양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해 주목받았다.

미·중 갈등은 어디까지 확대될까.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매우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양쪽 협상단 사이의 신뢰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는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이 패배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닌데도 그렇게 보이도록 양쪽 모두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양국 간의 전면적인 갈등이 미래를 위해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다."

무력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나.

"그러기에 두 나라는 아직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도가 높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그렇게 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이 만연한 시기에는 국가 지도자들을 포함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이어진) 20세기 초 유럽의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핵전쟁은 시작해서도 안 되고 그것을 통해 이길 수도 없다’고 했다. 무역전쟁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발생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사건이었다는 것에 역사가들은 대체로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 그만큼 우발성이 크게 작용했다는 이야기다. 국수주의와 포퓰리즘의 확산으로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등 맹방 사이에 불신이 깊어졌고, 자국의 국력은 과대평가하고 상대방의 힘은 과소평가하는 판단 착오가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것. 4년 4개월간(1914년 7월 28일~1918년 11월 11일) 진행된 전쟁에서 군인만 972만(질병, 사고 포함) 명이 숨졌다. 민간인은 전염병·굶주림 등으로 인한 간접 사망자까지 포함해 657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양국 간 교역 구조를 보면 미국이 중국보다 유리한 건 사실 아닌가.

"단순 비교로는 그렇다. 중국이 미국보다 상대방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관세를 매길 품목이 그만큼 많다.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미국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많다. 하지만 미·중 갈등이 미국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미국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고,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가계의 가처분소득도 줄어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생존을 위해 독자적인 서플라이 체인 확립과 기술 경쟁력 제고를 위해 기를 쓰고 달려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중국이 미국에 더 큰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 경제의 문제점에 대한 해답을 다른 나라에서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교육의 질을 높이고 과학기술 분야의 혁신역량도 제고해야 한다. 낙후된 공항과 고속도로, 인터넷망을 정비하는 등 인프라(사회간접자본) 투자도 늘려야 한다."

중국의 경제 상황은 어떤가.

"중국이 지난 40년간 이룩한 경제 성장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경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구 구조 변화와 환경문제로 인한 도전, 복잡한 권력 구조에 무역전쟁으로 자본 유출도 계속되면서 전망이 어두워졌다. 문제는 중국 경제의 성장률 둔화 여파가 중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 상황 변화는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문제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는 중국에서 국수주의 확산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중 두 나라를 둘러싼 상황이 더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양국의 금융당국이 경기 둔화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지가 미·중 갈등 전개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미·중 갈등이 한국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은 두 나라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중국에 가깝지만 경제 구조에서는 미국에 더 가깝다. 또 한국의 제조업은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을 통해 양국과 긴밀히 엮여있다. 미∙중 갈등이 깊어질수록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충격을 줄이기 위해 동남아 등으로 수출 채널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를 포함해 중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점이 있는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한국인은 근면하고 첨단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데다, 창업가 정신이 투철한 기업인들도 많아 잘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정치적인 언급은 피하고 싶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결국 좋은 정책이 좋은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미국 경제를 강하게 만드는 정책이 좋은 정치로 이어진다는 점은 트럼프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서머스 교수는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을 앞장서 비판해 왔다. 특히 지난해 3월 발표된 외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계획에 대해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 도입된 경제 정책 가운데 가장 비합리적"이라며 "멍청하고 미친 짓"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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