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조선]
美 의존도 높은 中, 소련과 달라
소득 낮은 중국, '패권'은 먼 얘기
한·미 동맹 강화가 최선의 방책

이춘근 연세대 정치외교학, 미국 텍사스대 정치학 박사,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이화여대 겸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2018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은 2019년 중반인 지금 그 깊이와 폭이 훨씬 넓어지고 있다. 단순한 무역전쟁이 아니라 문명의 충돌 혹은 체제 전쟁의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두 초강대국, 즉 미국과 소련이 서로 체제 경쟁을 했던 냉전 시대부터 살펴봐야 한다. 미국의 자본주의에 대적한다는 것이 원천적으로 어려웠던 소련의 공산주의는 붕괴하고 말았다. 냉전이 끝난 뒤 미국은 유일 패권국으로 군림했다. 즉 미국과 소련 두 초강대국에 의해 형성된 양극 체제가 미국이 주도하는 일극 체제 혹은 패권 체제로 바뀐 것이다. 미국에 감히 도전할 수 없는 다른 강대국들은 모두 미국을 지지하는 외교정책을 펼쳤고, 미국을 극도로 혐오하는 중동 국가들은 테러리즘이라는 특수한 방식으로 미국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1978년 개혁·개방을 이룩하고 미국의 적극적 지원 아래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중국이 등장했다. 인구가 14억에 이르는 나라가 지난 30여 년 동안 연평균 10%에 육박하는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룩, 미국 다음가는 경제 대국에 오른 것이다. 경제 대국 모두가 그렇게 하는 일이지만 중국은 1990년대 이후 경제성장률을 훨씬 능가하는 군사비 증강을 단행했다. 지난 20년 중국의 국방비 증가율은 (숨기거나 줄이기 때문에 서방 전문가들이 믿지 않는) 중국 정부 발표에 따르더라도 연평균 15% 이상이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중국의 부상’은 국제정치 최대의 화두가 됐다. 21세기 국제정치의 핵심변수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일 것이라고 예측됐다.

경제·경영학자들은 중국의 부상이 가져올 충격을 과소평가했다. 중국이 성장할 경우 중국은 민주화·자유화가 될 것이고, 중국이 지배하는 세상이 미국이 지배하는 세상과 별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 주장하는 학자들조차 있었다.

이 같은 주장은 국제정치의 본질을 무시한 것으로 이 세상 어떤 패권국도 자신의 지위를 도전자에게 평화적으로 물려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미국 패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있고, 중국은 미국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기에 아직 도전장을 내밀면 안 되는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관세전쟁 넘어 환율전쟁으로 확대될 것

미·중 패권 경쟁의 영역은 그 폭과 깊이가 점차 깊어질 것이다. 작은 규모의 군사충돌이 발발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미·중 패권 경쟁이 전쟁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경쟁도 전쟁 없이 끝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이유는 조금 다르다.

우선 미국은 중국과의 싸움을 소련과의 싸움보다 유리하게 치를 수 있는 조건들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중국의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는 과거 소련의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보다 크다는 사실이다. 즉 미국은 소련을 압도하기 위한 경제적 레버리지(지렛대)를 별로 갖고 있지 못했다. 미·소는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적이기보다 독립적이었다. 그래서 미국이 소련을 제압하는 데 45년이라는 오랜 시간(1945~90년)이 걸렸는지도 모른다.

반면 중국이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가장 중요한 배경은 미국과의 경제적인 교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분노해서 말하듯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국은 미국에서 창출한 막대한 흑자 덕택에 수조달러에 이르는 달러화를 축적해 놓고 세계에 큰소리칠 수 있었다. 2018년 한 해만도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약 4200억달러(약 495조원)의 무역 흑자를 냈다.

앞으로 이런 일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중국 경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할 것이다. 무역전쟁이 지금은 관세전쟁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만 앞으로 환율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달러화가 기축통화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중국이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난망(難望)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제전쟁을 통해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의 승패가 결정될 텐데, 미국이 승자가 되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만약 미국이 경제전쟁에서 승자가 되지 못한다면 미국은 군사력을 사용하는 전쟁까지도 각오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전쟁에 지지도 않은 채로, 즉 평화적으로 자신의 패권적 지위를 도전자에게 양보할 수 있는 전략문화(strategic culture)를 가진 나라가 아니다.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과거 세계를 지배했던 어떤 패권국도 도전자에게 자신의 지위를 평화적으로 넘겨준 경우는 없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파멸시킨 전쟁부터 7년전쟁, 나폴레옹전쟁,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등 인류사의 최대 비극인 이들 대전쟁들은 모두 패권국이 도전자에 맞서서 싸운 것이었다.

게다가 중국은 세계 패권국이 되기 위한 조건을 결여하고 있다. 우선 중국의 국민이 너무 가난하다. 어떻게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평균에도 미칠 수 없는 나라가 세계의 패권국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중국은 세계를 주도해 나갈 만한 이념이 없다. 미국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자신을 상징하는 이념으로 내걸고 세계를 향해 미국을 따르라고 말했다. 중국은 어떤 이념을 내걸 것인가? 세계인이 보편적으로 따라갈 수 있는 이념이 있기는 한 것인가?

◇‘우리민족끼리’는 국제정치 현실을 무시한 발상

오늘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이 국제정치의 처절한 논리에 무감하다는 사실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사람은 그동안 미국과 중국이 다투면 우리는 가운데서 중재자 혹은 균형자 노릇을 하면 되고, 안미경중(安美經中), 즉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에 의존할 수 있다는 정말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었다.

2015년 가을 박근혜 대통령은 천안문에서 행해진 중국의 전승 70주년 행사에 참여한 유일한 자유진영국가의 국가 원수가 되었다. 최근 열린 세미나에서 한 국제정치학자는 중국이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했을 때 응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 이후 중국이 한국을 우습게 보기 시작했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필자는 이 일을 계기로 미국이 한국을 더 이상 진정한 동맹국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고 믿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보인 친중적인 행보 역시 중국으로부터 진정한 이득을 얻어내기보다는 오히려 무시당하는 상황을 초래했을지 모른다. 대통령이 베이징 방문 중 혼자서 (한국 사람끼리) 밥을 먹어야 했던 경우가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 이 같은 주장을 하게 된 근거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우리민족끼리’라는, 전혀 현실을 무시한 국제정치적 발상의 포로가 되었다. 한국은 국제정치에 큰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나라다. 국토가 분단된 것도 국제정치의 결과물이며 아직도 통일을 이룩하지 못한 이유 역시 국제정치 때문이다.

두 나라가 싸우면 중립을 지키겠다는 말은 우선 미국과 동맹을 깬 연후에야 할 수 있는 말이다. 미국과 동맹을 유지한 채 우리가 중립을 택하겠다면 중국이 그 말을 믿겠는가? 그리고 동맹국인 미국은 한국을 뭐라고 생각할까? 강대국 간의 싸움에서 약소국이 중립을 지킬 수 있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다. 조선이 중립이 아니어서 한반도가 러일전쟁, 청일전쟁의 전쟁터가 되었던 것은 아니다.

선택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승자의 편에 서야 한다. 그리고 미국이 승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일일이 다 근거를 대며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게다가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기치를 우리와 공유하고 있는 나라다. 세계 많은 사람이 미국을 싫다고 말하면서도 압도적 다수가 중국보다는 미국이 패권국으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도 있다. 100년 전 조선 왕조 말엽 국제정세에 어두웠던 고종은 줄을 잘못 섰고, 결국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21세기에도 그런 운명이 되풀이되면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셰일 혁명까지 보태 21세기를 주도하게 될 미국과의 동맹을 앞으로도 더욱 돈독히 해 나가는 것이 한국의 안보와 경제 발전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 될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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