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최고 박물관의 명성은 오랫동안 영국 박물관(British Museum)의 차지였다. 이름 그대로 역사와 전통, 그리고 명성에 빛나는 박물관이기에 그 왕관의 지위는 확고부동해 보였다. 그런데 최근 그 판도에 큰 변화가 생겼다.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때문이다.

2000년 개관한 테이트 모던. 템즈 강과 밀레니엄 브리지와 더불어 황금의 3중주를 이룬다.

테이트 모던은 지난해 590만 명이 입장해 580만명이 입장한 영국 박물관(British Museum)을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방문자 수 기준 1위 자리에 올라섰다. 영국박물관은 충격에 휩싸인 반면 테이트 모던은 축제의 분위기다. 뉴욕타임즈가 특집기사로 내건 제목이 이를 반영한다.

"테이트 모던 그리고 런던의 영혼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The Tate Modern and the Battle for London’s Soul).

전통적으로 박물관은 한 도시와 국가, 그리고 시민들의 혼이 결집된 성소 같은 곳이다. 그러하기에 정신 혹은 혼(魂)을 의미하는 소울(soul)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테이트 모던은 2천년에 개관하여 경력이 아직 20년도 안된 매우 젊은 박물관이다. 게다가 현대미술관이다.

이런 두 가지 한계를 극복하고 21세기 가장 성공한 박물관이 되었다. 1920년대에 개관한 뉴욕 현대미술관 MoMa, 1970년대에 문을 연 파리 퐁피두 센터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독창적인 현대미술관이라 평가 받는다.

그 비약적인 성과의 비결은 과연 무엇인가? 문화 예술계뿐 아니라 도시행정가 그리고 기업 경영의 측면에서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죽어가던 것을 멋지게 살려낸 부활 정신이다. 테이트 모던은 런던 밀레니엄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이곳은 런던 템즈 강 남쪽 서더크(southwark) 지역에 있는데, 20년 전만 해도 흉물스럽게 버려진 뱅크사이드(Bankside) 화력발전소 자리였다.

이 발전소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런던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지어졌으나 공해문제로 1981년 이후 발전소로서의 기능을 멈춘 뒤 폐허처럼 버려진 상태였다. 발전소 건물을 설계한 자일스 길버트 스코트는 빨간 공중전화 박스 디자인으로도 유명한 건축가다.

미술관이 들어서기 이전 템즈 강의 북쪽은 국회의사당과 세인트 폴 대성당이 있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반면, 남쪽은 공업과 제조업의 쇠퇴로 점차 슬럼화 되어가고 있었다.

영국정부와 런던 시 당국은 2000년을 앞두고 우선 템즈 강에 밀레니엄 브리지를 설치하고 그 남쪽의 버려진 화력발전소를 현대미술관으로 바꾼다는데 합의했다. 마침내 밀레니엄이 바뀌던 2000년 5월 12일 개관하기에 이른다. 버려지고 죽어가던 것이 되살아 난다는 것처럼 감동적인 이야기는 없다.

테이트 모던의 옥외 발코니에서 바라본 템즈 강과 강북의 전경. 가운데 둥근 지붕이 세인트 폴 대성당.

두 번 째, 현대인들은 콘텐츠 뿐 아니라 공간 소비를 원한다. 테이트 모던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이 미술관의 진면목을 알려면 10층 전망 테라스에 올라가서 전경을 바라보아야 한다.

템즈 강과 그 강물 한가운데 놓인 보행자 전용의 밀레니엄 브리지, 그리고 현대미술관이라는 황금의 3중주가 한눈에 느껴질 것이다. 강남의 주거지와 강북의 상업지가 미술관과 보행자 전용 다리를 통해 함께 연결되었다.

다리는 도시와 미술관을 이어주는 소통역할을 하여 새로운 공간이 창조된 것이다.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의 하나가 되었다. 왜 이 미술관을 가리켜 ‘창조도시’(creative city) 런던의 아이콘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으리라. 탁월한 도시계획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세 번 째, 과거와 단절하지 않고 그 기억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구상이다. 세계적으로 쟁쟁한 건축가들이 참여한 국제 공모전에서 선택된 주인공은 스위스 건축회사 ‘헤어초크 & 드 뫼롱’이었다.

취리히 연방공대를 함께 다닌 동창생 자크 헤어초크와 피에르 드 뫼롱이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이들은 하버드 대학 디자인 대학원 객원교수로 초빙되고 모교에서 강의할 정도로 실력 있는 건축가였다.

두 사람은 기존의 외관에 최대한 손대지 않는 대신 내부는 미술관의 기능에 맞춰 새로운 구조로 바꾸는 방식으로 개조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99m의 거대한 굴뚝 그리고 긴 창문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여 굴뚝은 반투명 패널을 사용하여 밤이면 등대처럼 빛을 내도록 했다. 지금은 테이트 모던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3,400㎡에 이르는 넓은 내부 터빈 실에서 터빈을 제거하고 철제 빔과 천장크레인도 그대로 살리며 이곳을 미술관 로비로 만들었다. 이곳은 개관 당시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다. 헤어초크와 드 뫼롱 두 사람은 테이트 모던의 성공으로 건축가들에게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하였다.

발전소의 터빈이 있던 자리를 미술관 로비로 개조하였다. 실내의 철제 빔은 그대로 보존하여 과거의 기억을 유지하려 했다. 인기 있는 사진촬영 장소다.

네 번 째, 전시방식의 혁신이다. 현대미술관이라고 하면 ‘어렵다’, ‘다가가기 힘들다’는 고정관념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테이트 모던의 미술품들은 쉽게 설명되어 있고, 체험 중심이다.

각 층마다 어린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가족 단위의 미술 체험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미술관이 가족단위의 놀이터가 된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리기를 좋아하는 젊은 층의 인기를 끌면서 자연스레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이곳의 상설전시회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대기적으로 구성하는 대신 주제 중심으로 재구성한 것도 특색이다.

피카소, 모네, 마티스, 앤디 워홀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현대미술, 실험미술 등으로 나눠 전시하고 있으며 5층의 ‘Energy and Process’ 섹션에서는 자연과 에너지를 주제로 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방식이다. 상설 전시 이외에도 새로운 작가에 대한 전시가 역동적으로 이루어진다.

테이트 모던의 상설전시장은 연대기 순서가 아니라 주제에 의한 분류방식을 택하고 있다.

다섯 번째,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라는 슬로건과 ‘창조도시’(creative city)라는 스토리텔링의 합작품이다. 도시의 균형발전이라는 필요성에 ‘쿨 브리타니아’라는 스토리텔링의 당의정을 입혔다. 멋진 영국, 창조정신에 빛나는 영국이라는 슬로건이다.

[[미니정보]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와 창조도시 런던]

런던은 테이트 모던이 세워지기 전까지 현대 미술 분야의 유명한 미술관이 없었다. 대영박물관, 내셔널 갤러리를 비롯한 여러 박물관에서 고전 미술을 전시하였지만, 테이트 모던 덕분에 런던은 일약 현대 미술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벨기에 출신의 저명한 큐레이터인 크리스 더콘을 관장으로 초빙했던 것도 런던이란 도시의 예술적 개방성을 말한다.

발상의 전환은 트래픽의 증가, 즉 방문자 수의 증가로 이어졌다. 브렉시트 사태로 인해 혼돈과 혼란을 겪고 있는 영국이지만, 멋진 미술관의 존재 하나만으로 런던이라는 도시는 가고 싶게 만든다. 훌륭한 박물관과 미술관이 한 도시의 매력자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