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대표인 김모(47)씨는 최근 서울의 한 아파트 미계약분을 분양받았다. 입주 전까지 약 8억원을 내야 하지만 현금은 충분하다. 그는 "분양가가 많이 올랐지만 여전히 시세보다 최소 1억~2억원 싼 데다 다른 투자처도 마땅히 없어서 샀다"고 했다. 앞으로 한동안은 김씨처럼 돈 많은 '줍줍족'(미계약분을 주워담는다는 뜻)의 전성시대가 될 전망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이달 24일부터 서울 아파트 분양가를 주변 시세 이하로 통제하기로 했는데, 분양가가 낮아진다 해도 강남이나 한강변 등 인기 지역 아파트에서 중도금 대출이 가능한 '9억원 이하' 분양가는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지역들은 대부분 30평대 시세가 10억원을 훌쩍 넘는다. 대출 없이도 중도금을 낼 수 있는 부자들에게 기회다.

HUG의 분양가 규제는 현 정부 부동산 정책 기조와 일맥상통한다. 서울 집값이 조금만 꿈틀거린다 싶으면 원인은 따지지 않고 규제부터 내는 '대증(對症)요법'이다. 지난 7일 한국감정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값은 30주째 내렸지만 강남구는 2주 연속 보합을 기록했다. 강남 집값은 전국 부동산 시장의 선행지표로 통한다.

대증요법은 중장기적으로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정부는 2017년 8·2 대책을 내놓으며 서울 전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묶고 청약과 대출 관련 규제를 강화했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도 중과(重課)하기로 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지방 집을 팔고 서울의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탔다. 이후 1년간 전국 아파트 값이 0.25% 오르는 동안 서울은 6.3% 급등했다. 서울 주택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만드는 3기 신도시는 기존 1·2기 신도시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분양가 규제 역시 청약시장 과열, 실수요자 소외, 아파트 분양 연기에 따른 공급 부족 심화 등의 부작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정부가 서울 집값 잡기에 집착한 나머지 '샤워실의 바보' 같은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샤워실의 바보란 정부가 지나치게 시장에 개입하면 역효과가 생긴다는 의미를 담은 경제학 용어다. 샤워기에서 찬물이 나오자 놀라서 수도꼭지를 더운물 쪽으로 돌렸다가 뜨거운 물에 놀라 다시 찬물 쪽으로 돌리기를 반복하는 바보에 비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