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를 세우라는 건 제철소 운영을 그만두라는 말과 같습니다. 행정소송을 해서라도 막아야 합니다."(철강업계 고위 관계자)

제철소 핵심 설비인 고로(용광로)에 대한 지자체의 ‘10일 조업정지’ 처분이 가시화하고 있다. 철강업계는 "100년 세계 철강 역사에서 유례 없는 규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고로는 5일 이상 가동하지 않으면 쇳물이 굳어져 재가동이 불가능하다. 이를 복구하는데만 3개월 이상 걸린다. 현대제철는 조업정지시 당진제철소에서만 8000억원 이상의 손실을 입게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철강업계는 현재 기술력으로는 안전밸브를 사용하지 않고 고로를 가동할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대체 기술이 없는 상황에서 조업정지 처분은 사실상 국내 제철소의 12개 고로 운영을 모두 중단하라는 것과 같다고 호소한다. 이에 천문학적인 손실을 막기 위해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4 고로에서 한 작업자가 녹인 쇳물을 빼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10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한달의 유예기간 뒤 조업정지가 현실화되면 행정심판과 소송에 나설 방침이다. 충남도는 지난달 30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제2 고로에 대해 10일간 고로 가동중단 행정처분을 내렸다. 전남도·경북도도 포스코 광양·포항제철소에 대해 같은 이유로 조업정지 처분 절차를 밟고 있다. 박성봉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최종 소송 결과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포스코도 청문회 이후 처분이 확정되면 현대제철과 비슷한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의 쟁점은 고로의 압력을 빼주는 역할을 하는 안전밸브(블리더) 운용이다. 고로는 한번 가동을 시작하면 15~20년 동안 계속 쇳물을 생산한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보수 작업은 1~2개월 간격으로 연간 6~8회 진행된다. 이때 쇳물 생산을 일시적으로 멈추기 위해 수증기 등을 고로 내부에 주입하는데, 내부 압력이 급격히 올라갈 경우 폭발 등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안전밸브인 블리더를 열어놓는 이유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제철과정에서 생긴 오염물질을 저감시설 없이 블리더를 통해 공기 중에 배출해왔다"며 사과와 수습을 촉구했다. 지자체는 이 같은 민원을 토대로 조사에 착수, 대기환경보전법을 적용해 행정처분을 결정했다. 현행법은 방지 시설을 거치지 않고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 있는 공기조절 장치를 설치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다만 ‘화재나 폭발 등의 사고를 예방할 필요가 있어 시·도지사가 인정하는 경우’라는 예외조항이 있다.

철강업계는 지자체의 결정이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철강협회는 "고로 안전밸브 개방은 전 세계 제철소가 지난 100년 이상 적용해온 안전 프로세스"라며 "조업정지 이후 고로를 재가동한다 해도 현재로선 기술적 대안이 없다"고 했다. 협회는 세계철강협회(WSA)에 문의한 결과, "안전밸브를 열어 배출되는 소량의 잔여가스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지자체의 판단이 성급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블리더에서 배출되는 물질에 대한 공식 측정이나 분석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달 드론을 이용해 전남 광양제철소 3고로의 블리더 개방 상황을 조사하고 있고, 이달 말쯤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협회는 "블리더를 개방할 때 배출되는 것은 수증기가 대부분"이라며 "블리더로 배출되는 가스는 승용차(배기량 2000㏄) 한 대가 하루 8시간씩 10여일간 운행하며 배출하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철강 수요업체들도 공급 차질이 빚어질까 긴장하고 있다. 철강업은 국가 경제를 지탱해 ‘산업의 쌀’로 불린다. 실제 지난해 말 공급량 부족으로 선박 건조에 필요한 후판(두꺼운 철판)을 국내에서 조달할 수 없게 되자 국내 조선사들은 일본에서 고가의 제품을 수입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이달 4일 ‘철의 날’ 기념식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 "산업부가 할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