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정부의 비공개 시장점검회의에서는 가상화폐 열풍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다. 5월 한국 증시는 미·중 무역분쟁,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지수 리밸런싱(재조정)으로 부진했는데, 정작 불법이라고 치부해온 가상화폐는 날뛰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경우 연초 300만~400만원에 머물다가 지난 4월 1일 만우절부터 마치 거짓말처럼 오르기 시작해 현재는 1000만원 안팎에서 거래 중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해외에서 가격이 올라 우리도 오른 것뿐이다. 김치 프리미엄(한국 가상화폐가 유독 더 오르는 현상)도 지금은 없다. 우리 정부가 딱히 조치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의견이 모였다고 한다.

가상화폐 투자 열기가 유럽에서 시작됐다는 외신이 많이 나오고 있어 정부의 진단 자체는 틀리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너무 소극적이라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요즘 점점 더 비트코인이 투자 대체재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한 프라이빗 뱅커(PB)는 이렇게 말했다. "자산가 중에서 가상화폐가 화폐를 대체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단지 생각보다 오래 버티고 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 사는 사람이 생기고 있습니다. 게다가 세금도 내지 않기 때문에 자산가에겐 아주 매력적이지요."

해외에서도 비슷한 진단이 나오고 있다.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부유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가상화폐를 사는 자산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차이점은 대응 방식이다. 우리나라처럼 가상화폐를 외면하고 있던 나라들도 과세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이 대표적이다.

미국 국세청은 지난 4월 하원의원들이 가상화폐 과세 기준을 명확히 하라고 질의하자 "가까운 시일 내에 과세기준 수립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영국도 지난달 가상화폐에 대해 소득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일본은 가상화폐의 법적 근거를 담은 금융상품거래법이 참의원을 통과했다. 이에 따라 내년 4월부터는 가상화폐 명칭이 '암호자산'으로 바뀌고 정식 금융상품으로 인정된다.

가상화폐를 화폐의 하나로 인정하거나 가상화폐공개(ICO)를 허용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수익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말하고자 할 뿐이다. 가상화폐뿐 아니라, 앞으로 다시 나타날지 모르는 모든 디지털자산을 대상으로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

형평성 문제도 있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수익을 냈다면 세금을 내야 한다. 주식은 15억원 이상 보유한 대주주가 아니라면 0.25%의 거래세만 내고 있지만, 이 마저도 정부는 양도세 중심의 과세 구조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풍선 효과도 우려된다.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을 현재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하향 조정하는 소득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과세를 강화하면서 가상화폐를 외면하면, 점점 더 많은 자금이 가상화폐로 쏠려 금융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말 인사청문회에서 "국제 논의 동향 등을 보고 가상화폐 과세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슬슬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