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외국계 회사들이 한국시장 진출을 위해 편법으로 국내 기업들을 이용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부산 중소기업인 에스비글로벌은 지난해 11월 일본 MTM재팬을 통해 왕자제약 회사(글로벌 세제회사 ‘웰스필드로만’의 자회사)와 유명 캡슐세제 '세이카(SEIKA) 프레쉬 하이'에 대한 독점판매 계약을 맺었다. 한국 주부들이 직구(直購·해외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직접 구매하는 것)를 통해 구매할 정도로 입소문이 난 세탁세제다.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에 휘말린 해외 세탁세제 ‘세이카 프레쉬 하이 50X’

에스비글로벌은 국내 인플루언서(SNS 유명인)를 통한 마케팅에 나섰고 그 결과 이 캡슐세제는 현대백화점, PK마켓에 입점했다. 50알의 캡슐이 들어있는 세제 하나당 가격이 3만원이 넘어 일반 세제보다 비쌌지만 세탁력이 좋다는 평가가 나왔다.

문제는 독점계약을 한 지 두 달만에 불거졌다. 계약서상 독점판매권은 올 1월부터 12월까지로 1년간이었다. 첫해 판매목표 4억엔(한화 약 44억원)을 달성하면 독점판매 기간을 자동으로 2년 연장하기로 돼있었다. 이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도 납품가를 15% 올려주면 독점판매권리를 1년 연장할 수 있다는 조건도 붙었다.

그러나 웰스필드로만 재팬 측은 계약체결 두달만에 물품 공급을 중단하고 지난 2월 국내에 지사를 설립하며 직진출했다고 에스비글로벌 측은 밝혔다. 이는 그동안 일부 다국적 기업들이 해 온 전형적인 행태라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국내 진출 전에 시장을 시험평가해 보기 위해 국내회사에 독점판매권을 준 후, 시장성이 있으면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직접 자회사를 차리는 식이다.

에스비글로벌은 최근 웰스필드로만코리아 유한회사를 상대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에스비글로벌 관계자는 "웰스필드로만코리아는 계약을 통해 이뤄진 우리 회사의 프레쉬하이세탁볼 국내 독점판매권을 인정하지 않고 직접 판매하려고 한다"며 "명백한 계약 위반"이라고 밝혔다.

웰스필드로만그룹은 웰치·림·키쏘(Kisso)·허니베이비 등의 생활용품 브랜드를 소유,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글로벌 기업이다. 웰스필드로만코리아 관계자는 "세이카 프레쉬 하이볼 제품중 두가지(50개입 28개입)만 계약을 맺었다"며 "우리가 판매하려는 제품은 40개입 제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에스비글로벌 측은 세이카 전체에 대한 독점권으로 생각하고,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을 건 것으로 에스비글로벌이 무단으로 상표를 출원해 이에 대한 소송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웰스필드로만 로고

글로벌 커피전문점 ‘커피빈(Coffee bean)’도 비슷한 사건으로 법적분쟁을 벌였다. 국내 중소기업 TNPI는 2012년 5월 미국 커피빈 본사인 CBTL 프랜차이징 LLC와 중국 내 독점 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 따르면 TNPI는 상하이 이외 중국 전역에서 최초 10년간 커피빈 브랜드 매장을 운영할 수 있고 5년씩 2회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2013년 사모펀드 어드벤트 인터내셔널과 미래에셋이 컨소시엄을 구성, 약 4000억원에 미국 커피빈 본사의 구주 지분 75%를 인수한 뒤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미국 커피빈 본사는 연내 매장 30곳을 연다는 계획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TNPI 측에 1년만에 사업권 해지를 통보했고, 이를 이랜드에 넘겼다. 하지만 이랜드는 중국 커피빈 사업에 실패하고 2년만에 철수했다. TNPI는 커피빈 본사와 미래에셋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건강식품회사 에스비라이프도 이뮤노텍코리아를 상대로 제기한 독점판매권침해금지 가처분 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적이 있다. 이 사건은 외국계 본사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국내 기업과 직접계약을 체결하는 대신 중간자를 대동해 거래계약을 체결해 관심을 모았다. 에스비글로벌이 웰스필드로만재팬이 아닌 자회사 왕자제약을 통해 계약서를 쓴 것과 유사하다. 이후 이뮤노텍코리아는 폐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