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업계가 요청한 NFC단말기 보급은 불법으로 판단
정부, 예산으로 단말기 지급…업계 "노골적 지원" 불만

제로페이나 카카오페이와 같은 간편결제 서비스의 사업자가 가맹점에 QR코드 리더기 구매 및 포스(POS·판매시점정보관리) 업그레이드 비용을 지원해도 불법 리베이트(보상금)가 아니라는 금융당국의 유권해석이 나왔다.

그동안 카드단말기 무상 제공은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상 리베이트에 해당돼 엄격히 금지됐다. 이번 유권해석으로 간편결제 서비스를 하는 대다수 기업이 혜택을 보지만, 업계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제로페이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규제를 풀어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간편결제 등 새로운 결제방식이 가능한 단말기를 무상 보급하는 경우에는 부당한 보상금(리베이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중기벤처부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포스기(업데이트 포함) 30만대, QR코드 리더기 20만대를 가맹점에 보급할 방침인데, 업계에서는 정부의 단말기 지원 정책이 여전법상 금지된 리베이트에 해당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조선일보DB

여전법 제18조의3은 ‘신용카드와 관련한 거래를 이유로 부당하게 보상금, 사례금 등 명칭 또는 방식 여하를 불문하고 대가를 요구하거나 받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카드사나 밴(VAN)사가 카드사 가맹점에 카드결제 단말기를 무상 지원하는 것 역시 이 규제를 적용받는다. 이를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번 유권해석에 따라 간편결제 서비스를 하는 사업자는 가맹점에 관련 단말기를 무상으로 보급하거나 단말기 구입비를 지원할 수 있게 됐다. 간편결제는 공인인증서나 실물 카드 없이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온라인 간편결제는 30여개에 달하지만 오프라인까지 결제가 가능한 곳은 삼성페이,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페이코, 제로페이 등 뿐이다.

금융위는 신용카드 중심의 국내 결제 기반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낡은 규제를 정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 신용카드 결제 인프라가 고착화돼 혁신적인 간편결제 서비스 활성화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런 결제 시장을 유지할 경우 해외 간편결제의 발전 속도에 뒤쳐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번 유권해석이 ‘박원순 페이’라고 불리는 제로페이를 위한 것이라는 의구심이 나온다. 2017년 8개 전업계 카드사들이 공동으로 근거리무선통신(NFC)를 통한 간편결제 사업을 하려고 할 때 금융당국은 여전법상 리베이트에 해당한다며 NFC 단말기 무상 보급을 금지한 바 있다. 결국 카드사들은 NFC 결제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2년여만에 정부가 QR코드 리더기에 대해서는 관련 규제를 풀어준 것이다.

QR코드 결제 방식인 제로페이 특성상 가맹점들은 QR코드 리더기를 구입하거나 포스(POS·판매시점정보관리)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최대 4만5000원의 비용이 소요되는데 소상공인들의 경우 이 비용이 부담돼 QR코드 결제 도입을 꺼리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가 제로페이 가맹점을 공격적으로 늘리는 상황에서 단말기 비용까지 보전해주는 것이다.

카카오페이도 QR코드 결제 방식을 차용하고 있어 정부가 QR코드 관련 단말기를 보급하면 혜택을 보지만, 카카오페이는 온라인 결제 비중이 크다. 네이버페이와 페이코는 제로페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오프라인 결제를 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가맹점에 대한 리베이트가 카드결제 시장을 혼탁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2015년 리베이트 규제를 도입했고 2017년에도 이 규제를 강력히 적용했다"며 "정부의 제로페이 단말기 지원이 리베이트에 해당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불과 2년만에 규제를 완화한 것 아니겠냐"고 했다.

이번 유권해석으로 오프라인 간편결제의 압도적 1위 업체인 삼성페이는 오히려 시장 점유율을 빼앗길 위기다. 지난해 오프라인 간편결제 금액(19조5424억원)에서 삼성페이 비중은 81.6%에 달했다. 삼성페이는 기존 신용카드와 마찬가지로 마그네틱보안전송(MST)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기존 카드 결제 단말기로도 결제가 가능하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간편결제를 활성화하려면 시장에 주도권을 줘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정부가 노골적으로 제로페이를 밀어줘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간편결제 기업은 여전법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단말기 무상보급 리베이트 규제 대상이 아니었다"며 "카드사들의 NFC 사업 단말기 보급은 여전법의 규제 대상이었고, 당시와 지금의 결제 시장도 많이 다르다. 제로페이를 지원하기 위해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 아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