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르노삼성 엔진 공장은 공휴일인 6일 현충일에도 돌아갔다. 특근을 신청했던 근무자 69명 중 67명이 출근해 엔진 조립에 여념이 없었다. 전날 르노삼성 노조는 전 조합원 대상으로 '전면 파업'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5일 야간 근무자 900여 명 중 절반 정도가 근무를 지속했고, 6일에도 휴일 특근을 예정대로 진행한 것이다. 6일 출근자 중 대부분은 파업 불참을 선언한 노조 조합원이었다. 이날 출근한 한 근로자는 "집행부가 전면 파업까지 강행할 줄은 몰랐다"며 "엔진은 특근을 해서라도 미리 만들어놔야 향후 생산 피해를 줄일 수 있어 출근했다"고 말했다. 전면 파업을 선언한 노조 집행부에 상당수 노조원이 '특근'으로 맞선 격이다.

르노 그룹의 2인자인 로스 모조스(사진 한가운데) 제조·공급 담당 부회장이 지난 2월 말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공장 근로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노조 파업이 더 장기화하면 부산공장에 신차 생산 물량을 줄 수 없다”고 경고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이날 "노조의 파업 지침에도 불구하고 어젯밤 공장이 멈추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라인을 100% 가동하진 못했다"면서 "앞으로 어떻게 상황이 전개될지 여전히 답답하다"고 말했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모(母)회사인 르노그룹이 위탁생산하는 물량에 공장 가동의 절반을 의존하고 있다. 기존 위탁계약이 오는 9월 만료 예정이어서 새로운 위탁물량을 받아내지 못하면 공장 가동률이 40%까지 떨어져 생존이 어려워질 절박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노조 집행부는 이날도 "기본급 인상 등 회사의 전향적인 제안이 나올 때까지 전면 파업을 계속한다"는 방침을 유지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때 생산성 기준 세계 자동차 공장 8위에 올랐던 르노삼성 부산공장이 강성 노조 때문에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 명운 달린 신차 물량 확보 대위기

2011년부터 2년간 총 3800억원의 적자를 냈던 르노삼성은 2014년 르노 본사로부터 수출용 중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닛산 로그'의 생산 물량을 위탁받으면서 영업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로그 위탁생산 계약은 오는 9월 끝난다. 르노삼성은 내년 상반기 글로벌 시장에 출시될 르노 본사의 SUV 신차 'XM3'의 물량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본사와 협상 중이다.

하지만 올 들어 강성 노조가 부분 파업을 이어오면서 상황이 뒤바뀌고 있다. 르노 본사는 부산공장 대신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에 위탁 생산을 맡길 것을 검토 중이다. 르노그룹 로스 모조스 제조·공급담당 부회장은 2월 말 부산공장을 찾아 "노조 파업이 더 장기화하면 부산 공장에 신차 물량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부산 공장의 생산 비용은 르노 공장들 중 최고 수준"이라며 "비용이 더 올라간다면 앞으로 차종·물량 배정 경쟁에서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르노삼성 노조는 상급단체에 속하지 않은 개별 기업노조로, 2015~2017년 분규 없는 모범적 노사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다 작년 11월 '민노총 가입'을 공약으로 내건 박종규 노조위원장이 당선된 이후 최근까지 70차례 가까이 파업을 벌여, 2800억원 가까운 매출 손실을 발생시켰다.

그런데도 노조는 '파업에 많이 참가한 노조원에게 더 많은 돈을 줘야 한다' '파업 때 미지급한 임금을 100% 보전하라'는 등의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김용진 서강대 교수는 "르노삼성은 위탁 생산으로 먹고사는 처지"라며 "세계 모든 경쟁 공장이 위탁생산 물량을 받기 위해 생산성을 키우려고 목을 매는데 이처럼 위기감 없는 노조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가동률 40% 추락 위기…부산 경제도 흔들릴 수 있어

지난해 21만대를 생산한 부산 공장은 수출용 닛산 로그 위탁생산이 작년보다 40% 줄어든 6만대로 감소했고, 내수 판매도 부진해 올해 생산량은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17만대 이상 생산해야 손익분기점에 맞출 수 있는데, 올해 적자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가동률이 50%를 밑돌면, 현행 주야 2교대 근무를 유지할 수 없다. 부산 공장 1800명 생산직 노동자 중 절반은 인력 구조조정을 피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르노삼성차는 1차 부품사만 260여 개, 간접고용 인원까지 5만여 명에 달해 협력업체와 지역경제에도 상당한 피해가 예상된다. 일감이 줄어들어 지금도 '주 3일 근무'만 하는 협력업체가 부지기수다. 르노삼성 매출은 부산 지역총생산의 8%가 넘는다. 르노삼성 부품사 협의회장인 나기원 신흥기공 대표는 "르노삼성 납품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회원사들이 구조조정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