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의 비판을 수용해서 에너지기본계획을 수정한게 아니라 계획은 그대로 두고 비판에 대한 합리화를 위한 변명만 늘었다. 포장만 바꾼 것이다. 국민을 바보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만 있고 원전 비중은 없다. 에너지믹스(발전원별 비율·energy mix)의 핵심인 발전비중을 하위계획인 전력수급계획으로 넘겼는데, 이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 법에서 정할 것을 시행령으로 넘긴 것과 같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향후 20년간 국가 에너지 대계의 토대가 되는 ‘3차 에너지기본계획(2019~2040년)’이 4일 국무회의에서 심의·확정됐다.

계획안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정부안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17년 7.6%에서 2040년 30~35%로 대폭 늘리고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발생 주범인 석탄은 과감히 축소, 원전은 점진적으로 감축한다는 게 핵심이다. 원전과 석탄 발전 비중은 제시되지 않았다. 지난 19일 열린 공청회 내용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세운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믹스가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 저감 계획도 충족하지 못하는 비현실적인 안"이라며 "탈원전이라는 정부 정책을 결정해놓고 입맛에 맞는 데이터를 끼워맞춘 에너지기본계획"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4월 1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3차 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

◇ "에너지기본계획 아닌 탈원전 계획"

에너지기본계획이 에너지 안보, 경제성, 환경성 측면이 모두 고려된 장기 정책이 돼야 하는데 단순히 탈원전, 탈석탄 계획에 불과해 계획으로서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계획안에서 원전 비중은 제시하지 않고 "원전은 노후원전 수명은 연장하지 않고 원전 건설을 신규로 추진하지 않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감축한다"고 언급했다.

에너지기본계획 3차 계획안이 1,2차 계획안과 동떨어진다는 의견도 많다. 정부는 원자력 발전 비중에 대해 에너지기본계획 1차에서는 41%, 2차에서는 29%라고 명시했지만, 이번에는 언급이 없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원자력·양자공학과)는 "에너지기본계획은 석탄, LNG(액화천연가스), 태양광 등 각 발전원에 대한 에너지 정책 실현 방안이 들어가야하는데 이번 계획안에 이는 빠졌다"며 "신재생에너지를 하겠다고 선포하고 탈원전 계획을 세운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원전 비중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신규건설과 원전의 수명 연장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결국 탈원전 정책을 재확인시켜준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전세계 주요국이 원전을 환경과 안전을 이유로 축소하고 있다고 강조한 것에 대해서도 세계적 추세와도 동떨어진다고 지적한다.

구글도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100% 사용하는 'RE100'을 추진하다 이를 포기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CF100(Carbon Free)를 선언했다. 지난해 일본도 발전 비중에서 원자력을 20% 이상 유지하기로 했다. 미국은 원전 4기를 건설중이다. 프랑스의 발전비중에서 원전이 감소하더라도 전체 발전량이 늘어 원전의 절대 발전량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정범진 교수는 "세계적 추세를 사실대로 반영하지 않고 결론을 내놓은 후 입맛에 맞는 데이터만 모아 ‘체리 피킹’(맛있는 체리만 골라 따먹는 행위)’ 하고 있다"며 "현재 안은 환경부의 2030년 온실가스 저감계획을 만족하지 못하고 한전의 적자를 야기하는 것은 물론 미세먼지도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저감을 위해 원전이용을 확대하라는 자난해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권고도 무시했다"고 했다.

지난 4월 1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에서 그린피스 회원들(앞쪽)이 ‘RE(Renewable Energy·재생에너지) 100 이행’이란 현수막을 들고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지지했다. 반면, 경북 울진 주민(뒷줄) 등은 ‘신한울 건설 재개’ 구호가 적힌 옷을 입고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주장했다.

◇ 신재생에너지 2040년 35% "비현실적 목표"

정부는 지난 2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전문가 태스크포스'(TF)가 권고한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여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2040년까지 30~35%로 확대하기로 했지만, 전문가들은 이는 비현실적인 수치라고 이야기한다. 2013년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5년 7.5%, 2035년 11%를 제시했다. 2017년 말 문재인 정부 들어 에너지전환정책이 추진되면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까지 늘리겠다고 한 것과 비교해도 높은 수치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워킹그룹은 제시된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비현실적인 목표라는 지적에 대해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40년 전 세계 평균 재생에너지 비중을 40%로 전망한 것을 근거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IEA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40%는 수력발전을 제외하면 20%에 그친다. 현재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7% 수준이라고 하지만 태양광·풍력만 보면 1.6%에 불과하다.

정용훈 교수는 "정부는 워킹그룹에서 IEA가 전망한 2040년 전 세계 재생에너지 비중이 평균 40%라는 점을 근거로 목표를 세운 후, 이중 절반이 수력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다시 OECD 평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제시했다"며 "계획안에서 정부는 숫자를 정해놓고 근거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간헐성 문제를 지닌 태양광과 풍력은 수력이 보조발전을 해줘야 전망 숫자를 유지할 수 있는데, 정부는 수력 수치를 그대로 빼면 나머지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유지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