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기술 학회인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가 중국 화웨이 소속 연구자를 논문 심사위원에서 배제하기로 했다가 나흘 만에 번복했다. 중국 학회들이 집단 반발하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IEEE는 160여국 42만3000여명의 회원을 둔 공학자 단체다. 200종의 국제학술지를 발간하며 통신 기술에서 나노 기술, 인공지능(AI)에 이르는 테크놀로지 분야의 표준을 주도한다.

IEEE는 3일 학회 홈페이지에 "화웨이와 계열사의 직원들은 우리의 논문 출판 과정에서 심사위원과 편집자로 계속 참여할 수 있다"며 "어느 기업 소속이든 IEEE의 회원은 모든 논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4일 전인 지난달 30일 화웨이 소속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을 논문 심사위원에서 배제한다고 발표한 것을 IEEE 스스로 취소한 것이다. 당시 IEEE는 화웨이 연구자를 배제한 이유에 대해 "미국 정부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화웨이와 그 계열사들이 미국의 첨단 기술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한 미 정부의 조치를 따랐다는 것이다. 학술지 심사위원은 출간되지 않은 논문을 사전에 볼 수 있는 데다 논문 저자들에게 심사에 필요한 비공개 정보를 추가로 요구할 수 있다. 화웨이 출신 심사위원을 통해 미국의 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자칫 미·중 과학계 간 충돌로 치달을 뻔했지만 IEEE의 번복 이후 사태는 가라앉은 모양새다. 이 학회는 3일 "최근 미 상무부로부터 미 정부의 화웨이 제재가 학술지 출판 활동에도 적용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짤막한 철회 사유를 밝혔다. 상무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IEEE 측이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는 중국 학계의 대규모 반발을 의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전자학회·중국통신학회 등 중국 10개 학회는 지난 2일 "IEEE의 이번 제한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학술 교류의 정치화에 반대한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 베이징대 한 교수는 IEEE 편집위원직에서 사퇴를 선언했고, 다수 중국 과학자는 IEEE와 교류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과학기술계 인사는 "AI, 통신, 반도체 등 주요 테크 분야 학술지에서 입김이 세진 중국 과학자들이 대거 실력 행사에 나서자, 깜짝 놀란 IEEE 측이 적당한 이유를 둘러대면서 한발 물러서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