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히드마틴 주최 'AI 드론 레이싱 대회' 결승 진출한
심현철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드론 레이싱은 '자율 비행'하는 드론 택시 기술의 핵심"

록히드마틴이 ‘알파 파일럿’이라는 이름의 AI 드론 레이싱 대회를 개최했다. 인간의 조종 없이 드론 스스로 가장 빠르게 코스를 통과하는 팀이 100만달러(약 12억원)를 거머쥐게 된다. 오른쪽 사진은 고글을 쓰고 드론을 조종하고 있는 드론 레이싱 선수들.

1997년 체스, 2011년 퀴즈, 2016년 바둑. 인간은 기계와의 대결에서 패했다. 방대한 데이터,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경우의 수를 훈련·학습한 인공지능(AI)의 적수가 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기계가 인간을 따라잡지 못한 영역이 있다. 팀원과 협업하고 물리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하는 모터스포츠가 그렇다.

미국 군수회사 록히드마틴이 기계의 한계에 도전하는 매우 주목할 만한 대회를 열었다. 록히드마틴은 올 초 ‘알파 파일럿(AlphaPilot)’ 드론(무인기) 레이싱 대회’를 개최했다. 복잡한 코스를 빠르게 주행해야 하는 드론 레이싱을 인간 조종 없이 드론 스스로가 하도록 한 인공지능(AI)을 개발한 우승자에게 알파 파일럿이란 호칭과 함께 100만달러(약 12억원)를 주겠다고 한 것이다.

복잡한 코스를 빠르게 통과해야 하는 드론 레이싱은 이미 미국 ESPN 등이 전 세계에 생중계할 정도로 인기 있는 스포츠다. 선수는 1인칭 시점 고글을 쓰고 드론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드론 시점 영상을 보고 조종한다.

알파 파일럿은 올해 연말 인간 조종사와 맞붙는다. 세계 최대 드론 레이싱 대회인 ‘알리안츠 월드 챔피언십’ 승자와 ‘인간 대 기계’의 대결을 벌이게 된다. 여기서도 우승하면 25만달러(약 3억원)를 추가로 받게 된다.

록히드마틴은 420개가 넘는 팀이 지원해 본선 진출자 9팀을 최종 선발했다고 최근 밝혔다. 미국·유럽 일색의 본선 팀 중 마지막 아홉번째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심현철 전기·전자공학부 교수팀이 이끄는 ‘USRG’팀이 이름을 올렸다. 1차 대회가 오는 8월, 최종 우승자를 가르는 대회는 11월쯤 치러질 예정이다.

심 교수는 1990년대 초반부터 드론을 연구해 온 ‘드론 연구 1세대’로 꼽히는 인물이다. 알파파일럿 준비, 강의, 외부 일정 등으로 바쁜 그와 5월 31일 전화 인터뷰했다.

최종 본선 진출팀에 들어간 한국의 KAIST USRG팀. 사진 왼쪽에서 세번째가 팀을 이끌고 있는 심현철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최종 9개팀이 남았다. 본선 진출팀에 오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
"3월 초 대회 신청을 마감하고, 4월 중순 9팀을 최종 선정하기까지 시간이 짧았다. 이 기간 록히드마틴 측은 세 가지 기준으로 본선 진출팀을 좁혀 나갔다.

우선 팀이 과거에 어떤 연구를 했는가를 영상으로 찍어 제출하게 했다. 그다음 게이트 인식 능력을 점검했다. 드론 레이싱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코스를 돌면서 일정 간격으로 비치된 게이트를 통과하는 것이다. 드론이 스스로 게이트를 통과하려면 게이트가 어디 있는지 인식해야 한다. 방법은 드론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면 된다. 게이트는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드론이 스스로의 위치만 알면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다. 이는 드론에 달린 카메라, 센서 등을 통해서도 측정할 수 있다. 마지막 관문은 가상으로 드론을 날려보게 한 것이다. AR(증강현실)·VR(가상현실)을 통해 가상으로 각 팀의 드론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코스를 돌았는지를 측정했다."

드론도 각 팀이 개발한 것인가.
"록히드마틴이 같은 드론을 각 팀에게 줬다. 형평성 문제를 고민한 결과인 듯하다. 하드웨어만 준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 틀도 다 만들어 줬다. 각 팀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용자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올리는 정도였다."

다른 팀의 전력은 어떤가. 한국팀의 우승 가능성은.
"최종 본선 진출팀 중 네덜란드의 MAV랩, 스위스 취리히팀이 막강하다. 특히 취리히팀의 경우 드론 레이싱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 이론·실전을 겸비하고 있는 교수가 이끌고 있어 잘할 것이다.

드론 개발·제어 등에 경쟁력이 있는 우리 팀으로서는 주최 측이 동일한 드론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약간 불리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우리도 AI 드론 레이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온 만큼 잘 해보려고 한다.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우승팀이 되면 올 연말 인간 조종사와 대결하게 된다.
"아직 드론의 카메라 기술은 인간의 눈을 따라가지 못한다. 또 주최 측이 드론을 제공하기 때문에 팀으로서는 해볼 수 있는 시도에 제약이 많다. 이번 대회에서는 사람이 좀 더 빠르지 않을까 예상한다.

하지만 사람과 기계의 격차는 빠르게 좁혀질 것이다. 1년 전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사람·기계가 각각 조종하는 드론 레이싱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이때 사람이 평균 2.8초 정도 빨리 코스를 통과했다. 간발의 차였다. AI가 조종한 드론은 약간 느리긴 했지만 코스를 정확하게 이해했다. 이런 시도가 계속된다면 조만간 기계가 사람을 따라잡을 것이다."

AI가 드론 레이싱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지금 자율주행차 개발이 한창이다.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도 차를 탈 수 있고, 차량이 스스로 알아서 가야 하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 드론 택시에 대한 요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드론 택시가 성공하려면 자율주행차와 비슷하게 스스로 비행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드론 레이싱은 출발점부터 도착점까지 장애물을 피해 누가 빠르게 도착하는가를 겨루는 것 아닌가. AI 드론 레이싱의 핵심이 자율 비행 기술이다."

자율 비행 기술로까지 발전하기 위해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을 것 같은데.
"카메라에 대해 언급했었는데, 이런 기술을 가진 기업들과 활발히 협업하면 좋을 것 같다. 이를테면 삼성전자는 카메라 기술도 있고,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도 직접 만든다. 삼성 같은 회사와 협업할 수 있다면 드론 기술을 더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대학과 협업을 꺼리는 게 사실이다. 기술을 학교와 공동 개발하면 이에 관한 지적재산권(IP)도 공동 소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 대학의 경우 이런 식의 IP 수입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곳들이 많다. KAIST가 삼성전자와 IP 관련 소송 중이기 때문에 이런 류의 협력은 앞으로도 소극적인 분위기일 것 같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