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의 도움 없이 안정적인 에너지전환을 이루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국제사회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지난 28일(현지시각) '친환경 에너지 체계에서의 원자력발전'을 제목으로한 보고서를 발표하며 노후화된 기존 원전의 가동 중단 대신 수명 연장과 신규 원전 건설을 권고했다. IEA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원전 비중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늘리는게 경제적이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고 했다.

IEA는 1차 석유 파동을 계기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협의하기 위해 1974년 설립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기구다. IEA가 20년만에 발표한 원전 보고서는 급진적인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깨달음을 주고 있다.

IEA는 선진국(미국·일본·한국·EU 회원국 등 41개국)에서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있지만, 그보다 빠르게 원전 비중을 낮추고 있어 전세계적으로 에너지 수급에 지장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했다.

원전 비중이 축소될 경우에도 에너지 수급에 차질이 없으려면 2040년에는 전체 발전에서 신재생에너지가 85%에 달해야 한다. 하지만, 각국의 신재생에너지 확대에도 해당 비중은 20년간 36%에 머물러 있다.

IEA는 원전에 대한 투자 없이 버티려면, 신재생에너지를 포함한 다른 에너지원에 2040년까지 1조6000억달러(약 1900조원)가 투자되어야 한다고 추산했다. 결국 소비자들에게 더 비싼 전기요금 청구서가 부담되는 것이다.

한국은 40여년간 원전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1~2년간 정부의 급격한 탈원전으로 원전 생태계가 붕괴되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원전 기자재를 만드는 두산중공업 등은 구조조정 등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원전보다 비싼 액화천연가스(LNG)와 신재생 발전 비중을 늘리며 한전은 지난해 6년만에 적자(영업손실 2080억원)를 냈다. 지난해 한수원 또한 102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2018년 신입생은 5명 중 1명이 자퇴했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원전 대신 LNG 등의 발전을 늘리며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달성하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하지만, IEA가 보고서에 언급했듯 원자력 발전을 줄이면 전기요금 인상과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는 예고된 수순이다. 전기요금을 언제 인상하느냐의 문제일 뿐 인상 압박은 커지는 것이다.

탈원전을 하자, 하지 말자를 이야기하기 전에 탈원전이 야기할 전기요금 인상과 온실가스 배출 영향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지 솔직한 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