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들 없으면 이 공사장 안 돌아갑니다."

30일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박모 차장이 관리하는 근로자 180여 명 가운데 130명가량이 외국인 근로자다. "젊은 사람도 가끔 오는데 힘들다고 금방 관두기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를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국의 상당수 공사장이 이곳과 비슷한 형편일 거라고 했다. 그래서 건설 업계에서 "외국인 근로자 더 쓸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정부가 연간 5만5000명 규모의 건설업 재외 동포 취업 비자(H-2 비자) 쿼터를 최근 6만명으로 확대했다. 8년 만에 쿼터를 늘린 것이다. 건설업 인력 수급이 더 어려워질 경우 연내에 6만5000명까지 쿼터를 늘린다는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다. 한 해 1만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더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건설 현장의 단순 근로직 부족 등 인력난을 완화해주고, 건설 경기 후퇴를 막으려는 것이다. 한 중견 건설업체 관계자는 "내국인 현장 인력이 갈수록 고령화하는 데다 청년들은 건설업을 기피하는 경향이 커 인력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H-2 쿼터를 늘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러나 노동계의 반대가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건설 현장에서는 일손이 부족한데, 외국인 근로자 확대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우즈베키스탄 등 재외 동포 건설 근로자들과 갈등이 생길 여지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외 동포 건설업 근로자 1만명 더 늘어날 듯

고용노동부가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고용부는 지난달 H-2 비자 한도를 현행 5만5000명에서 6만명으로 늘렸다. 정부는 각 산업별로 상한선을 두는 방식으로 외국인 근로자 수를 제한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가 합법적으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기 위해선 일반 근로자 취업 비자인 'E-9'나 방문 취업 동포 비자인 'H-2'를 받아야 한다. H-2 비자는 2007년 도입될 때는 쿼터가 없었지만, 국내 일자리 잠식이 심해지면서 2009년부터 6만3000명으로 한도를 설정했다. 이듬해 6만5000명으로 늘렸다가, 2011년부터 5만5000명으로 줄였는데 다시 늘리는 것이다.

H-2 비자로 취업할 수 있는 문턱도 낮춰주기로 했다. 건설업 취업 교육을 단축시켜주는 것이다. 현재는 일반적인 입국 교육 16시간을 받은 뒤 건설업 취업 교육(8시간)을 추가로 받아야 하는데 내년부터는 추가 교육을 폐지하기로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건설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교육 내용이 겹친다는 민원이 많아 8시간 건설업 취업 교육은 없애기로 했다"고 말했다.

◇건설 현장, 내국인-외국인 근로자 갈등 가능성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월 건설업 일자리는 지난해보다 3만개가 줄었다. 건설업 고용은 올해 들어 2년 9개월 만에 감소세로 전환됐다. 경기 후퇴에다 일손 부족도 겹쳤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상황이라서 H-2 비자 쿼터를 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그러나 전국 공사 현장 곳곳에서 "외국인 불법 체류자 대신 한국인 근로자를 채용하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노동계가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건설 현장에서 합법적으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 10명 가운데 9명이 H-2 비자로 입국한 중국 동포다. 한국노총 건설산업노조 조승완 과장은 "국내에서 취업할 수 있는 비자 없이 불법 체류하면서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단속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취업 비자 쿼터를 늘리면 우리나라 노동자 일자리는 더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건설업 현장의 인력 부족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며 "건설업이 대표적인 서민형 일자리이고, 최근 건설 일자리가 감소하는 점을 감안해 합리적으로 쿼터를 관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