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좋아지는 듯했던 소비심리가 다시 악화됐다. 28일 한국은행은 '5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통해 이달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97.9로 한 달 전보다 3.7포인트 떨어졌다고 밝혔다. 하락 폭이 작년 7월(-4.6포인트) 이후 가장 컸다.

정부와 청와대가 "소비심리는 괜찮다"고 줄곧 강조했지만, 갈수록 나빠지는 거시경제 지표 앞에 일반 소비자들의 경기 인식은 비관적으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경제활동이 경제 주체들의 심리에 크게 좌우되는 만큼, 소비 심리가 가라앉으면서 지금보다 더한 소비 침체, 투자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비심리 좋다"더니 일제히 꺾여

CCSI는 일반 소비자들의 체감 경기를 보여주는 지표로, 전국 25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다. 이번 조사는 이달 10~17일 사이 이뤄졌다. 2003~2018년의 소비자 심리 평균치를 100으로 놓고, 지수가 100보다 높으면 소비 심리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고, 100보다 낮으면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내가 들어갈 곳은… -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9 제1차 KB굿잡 우수기업 취업박람회’에서 학생들이 채용 공고 관련 인쇄물을 살펴보고 있다. 250여 우수 기업이 참가한 이번 박람회에 구직자 4만여 명이 찾았다.

CCSI는 작년 11월 95.7까지 낮아진 다음 5개월 연속 상승하며 지난 4월(101.6)에는 기준선인 100을 넘겼다. 이에 지난 24일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한 경제포럼에서 "다행히 소비자심리지수, 제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업턴(상승)하고 있다"며 경기 낙관론을 폈는데, 얼마 못 가 반락하고 말았다. 권처윤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1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수출 지표도 좋지 않은 데다 미·중 무역 분쟁으로 주가가 떨어지고 환율은 급상승하면서 소비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지수를 구성하는 6개 항목별로 보면 경기 상황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현재경기판단 CSI(69)는 전월 대비 5포인트, 향후경기전망 CSI(75)는 6포인트 떨어졌다. 소비자들이 6개월 전에 비해 현재 가계의 재정상황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보여주는 현재생활형편 CSI(91)와 앞으로 6개월 후의 생활형편을 내다본 생활형편전망 CSI(92)는 각각 2포인트와 3포인트 하락했다.

가계수입전망 CSI(97)도 2포인트 빠졌다. 소비지출전망 CSI(109)는 1포인트 하락했으나 100보다 높은 만큼 향후 지출을 늘리겠다고 밝힌 소비자가 여전히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소비지출 세부 항목별로 보면 '교통·통신비' 지출전망치가 전달 109에서 112로 유일하게 3포인트 올랐을 뿐 나머지 의류, 외식비 항목 등은 지출전망치가 전달보다 1포인트씩 내려갔다. 웬만해선 손대지 않는 교육비 지출전망도 102에서 101로 1포인트 하락했다. 교통·통신비는 최근 버스요금 인상 여파 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고용전망도 19년來 최악…"집값·물가는 오를 것"

일자리 전망도 우울했다. 앞으로 6개월 뒤 일자리 사정이 어떨 것 같으냐를 보여주는 취업기회전망 CSI(80)는 고용지표와 경기인식이 나빠지면서 3포인트 내렸다. 취업기회전망 CSI는 작년 1월부터 100 밑으로 떨어져 줄곧 기준치(100)에 한참 못 미치는 70~80대에 머물고 있다.

소비자들의 이 같은 암울한 전망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28일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 상위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보면, 6월 전망치가 89.5로 3개월 연속 하락했다. 특히 6월 고용 전망이 94.5로 19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2000년 7월(94.3)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업종별로는 섬유·의복(81.3), 의약품 제조(83.3), 자동차(83.7), 도·소매(84.1) 업종이 특히 부정적이었다. 고용 전망이 가장 부정적인 것으로 나온 섬유·의복 업종 기업인들은 "임금 인상에 따른 채산성 악화를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최저임금이 3년 연속 두 자릿수로 오르면 정말 답이 없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런 와중에 집값과 물가는 오를 것으로 보는 소비자가 많았다. 주택가격전망 CSI(93)는 전월보다 6포인트 상승했다. 여전히 100을 밑도는 수준이긴 하지만 최근 강남권 주요 아파트 단지의 실거래 가격이 오르는 등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이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가수준전망 CSI는 145로 전월보다 3포인트 올랐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기름값이 상승 국면인 데다, 원·달러 환율이 급격히 뛰면서 수입품 가격도 덩달아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점이 반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