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主流) 음악 시장에서 밀려나 있던 트로트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지난 2월 28일부터 5월 2일까지 방송된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이하 미스트롯)' 열풍이 잠자던 트로트 소비 시장을 각성시킨 효과다.

트로트 시장 관련 통계는 부족하지만 간접적으로 측정한 트로트 산업의 성장세는 폭발적이다.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에 따르면 트로트 콘서트 관객은 올 상반기 기준 6만3000명으로 작년 동기(2만8800명) 대비 배 이상 늘었다.

음원 시장에서도 괄목할 성장세다. 국내 1위 음원 사이트 멜론에 따르면 성인가요 음원 스트리밍(재생) 이용자 수는 미스트롯 방송 이후 80% 증가했다. 또 다른 음원 사이트인 지니뮤직에서도 전체 스트리밍 중 트로트 비중은 작년 12월 넷째 주 0.99%에서 5월 첫째 주에 1.74%로 치솟았다.

BTS나 엑소를 한류 스타로 만든 유튜브 동영상 조회 수도 폭발적이다. 미스트롯 방송 일부분을 편집해서 올린 총 525개의 동영상은 유튜브·네이버 등 각종 동영상 온라인 미디어에서 누적 조회 수 1억회를 넘겼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성미경 책임연구원은 "TV 방송 시간만 기다리던 실버 세대도 유튜브나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미스트롯' 동영상을 찾아본다"며 "미스트롯은 음악적으로 하대받던 트롯에 대한 편견을 깼다"고 말했다.

◇트로트 관객·음원·음반 최소 70% 성장

통계만큼이나 트로트 공연 현장의 열기도 뜨거웠다. 지난 25일 오후 2시 인천광역시 인천남동체육관. '미스트롯' 본선 진출자 12명이 출연하는 '미스트롯 효 콘서트' 공연장의 5000석 객석은 팬들로 가득 찼다. 중년 팬들이 '홍자퀸(홍자+퀸)' '송블리(송가인+러블리)'라 적힌 풍선·야광봉을 흔들고 있었다. 2시간 30분가량 진행된 공연엔 '앙코르' 연호가 세 차례 나왔고, 공연 후반부엔 팬들이 무대 앞으로 달려나와 손을 들고 펄쩍펄쩍 뛰면서 공연을 즐겼다.

TV 무대에서 노래하는 미스트롯 우승자 송가인(사진 왼쪽).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미스트롯 효 콘서트 서울 공연에서 출연자들이 무대 위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있다. 트로트 콘서트 관객은 올 상반기 기준 6만3000명으로 작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그동안 음악 시장에서 소외돼 있던 50·60세대들이 공연장을 찾고 음원을 구매하면서 공연 시장도 변화하고 있다. 이날 아내와 공연장을 찾은 김한배(61)씨는 "홍자 팬이 됐는데 30년 전 주현미를 좋아한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어떤 가수에 빠져본 것 같다"면서 "공연장을 직접 찾아다닐 것이라고는 최근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트로트 공연이라 하면 떠오르는 허름한 가설무대는 이제 옛날 얘기가 됐다. 이날 무대는 스케일이 달랐다. 무대 양편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이 공연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고 있었고, 투입된 스태프도 100명이 넘어 화려한 아이돌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8월 초까지 전국 23개 도시에서 열리는 미스트롯 콘서트의 총예매 관객 수는 8만명으로 예매율은 97%에 이른다.

송가인·정미애·홍자·김나희·정다경 등 미스트롯에서 톱5에 오른 가수들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김광수 포켓돌스튜디오 총괄프로듀서는 "50·60세대는 TV로 음악을 향수하는 세대인데, 지상파에선 볼 만한 음악 방송이 사라져가는 추세였다"며 "미스트롯 이후 어른들도 '난 송가인이 좋아' '난 홍자가 노래를 잘하던데'란 얘기를 떳떳하게 하면서 공연장을 찾게 됐다"고 했다.

아이돌 못지않은 트로트 가수 팬덤도 생겨났다. 인천 콘서트를 찾은 최용순(50)씨는 "송가인 팬 카페를 통해 주문한 응원 도구를 들고 왔을 정도로 팬"이라며 "역시 우리 정서엔 트로트"라고 말했다.

죽어가던 트로트 시장은 몇 년 전부터 홍진영 등 신세대 가수들의 등장으로 반등의 조짐이 시작됐다. 넥스타엔터테인먼트 남규석 대표는 "젊은 층에 다가갈 수 있는 가볍고 비트가 있는 트로트가 등장하면서 희망의 싹이 보였고, 미스트롯이 등장하면서 결정적으로 붐업시킨 것"이라며 "우리나라 트로트 음악사는 미스트롯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가수도 팬도 달라진 트로트 열풍

미스트롯 이후 가장 큰 수혜자는 역시 출연 가수들이다. 시골 장터 경연에서 톱 5에 든 가수들은 출연료가 최소 2배에서 최대 10배까지 폭등했다. '김양(본명 김대진)'은 본선 12명에 들지 못했지만 요즘 트로트 행사 시장에서 1급 대우를 받고 있다. 김양 역시 행사비가 40% 이상 올랐다. 김양은 "1년 전 하루 공연이 많아야 2개였는데 요즘은 하루 3~4개 스케줄을 다닌다"며 "오는 9월 일본에서 열리는 한류 콘서트에도 초청받았다"고 말했다. 최근 한 달간 김양이 백댄서·의상·메이크업 등에 지출한 금액은 월 3000만원. 이달 초 발매된 새 앨범을 제작하는 데에는 5000만원을 투자했다. 트로트 시장에 새로운 투자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인 이효수 영남대 전 총장은 "미스트롯은 창의적 아이디어로 인재를 발굴하고 쇠퇴 일로에 있던 트로트 시장을 화려하게 부활시켰다"며 "참가자들이 단계마다 스스로 개발하고 창조하는 패러다임을 도입해 새로운 형태의 트로트 시장을 창출시켜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시장을 활성화시켰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