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노사가 올해 임금과 단체협상에서 진통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늘고 있다. 노조가 이번 협상의 핵심 요구사항으로 내건 1만명 수준의 인력 충원에 대해 사측이 결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현대차 노조는 미래 자동차 시장이 가솔린, 디젤 등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 중심으로 넘어가면서 생산인력을 현 수준으로 유지할 필요성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인정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대규모 인원 충원 요구를 하는 데 대해 자동차 업계에서는 ‘생떼쓰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임금과 성과급보다 1만명 수준의 인력 충원, 기아차와 동일한 방식의 통상임금 미지급금 지급 요구 등에 중점을 둘 예정이다. 사진은 지난해 광주형 일자리에 반대하는 시위를 가진 현대차 노조.

◇노조, 2025년 내연기관차 57% 감소 전망…명분 없는 인력 충원 요구

27일 현대차 관계자에 따르면 노사는 오는 30일 올해 임단협의 첫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노조는 앞서 지난 13일 사측에 ▲임금 12만3526원 인상 ▲당기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 ▲인원 충원 ▲상여금 통상임금 적용 ▲정년 64세로 연장 등의 요구안을 전달했다.

노조는 당초 이달 23일에 상견례를 열 것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요구사항들에 대한 검토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노조가 요구한 날짜보다 1주일 늦은 30일에 첫 협상을 갖기로 결정했다.

현대차가 노조의 요구사항을 검토하는데 예년보다 긴 시간을 들인 것은 인원 충원과 상여금 통상임금 적용 요구에 맞선 대응방안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가 회사에 요구한 충원 필요인력 규모는 1만명 수준이다. 노조는 2025년까지 정년퇴직 등으로 인해 1만7500명의 인력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년퇴직 등에 따라 결원이 생기면 정규직으로 충원해야 한다’는 내용의 단체협약 44조를 근거로 회사에 적어도 1만명 이상의 충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반면 사측이 2025년까지 정년퇴직 등으로 인해 자연 감소할 것이라 예상한 인력 규모는 7500명이다. 현대차는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지 않고도 매년 정년퇴직에 따라 전기차 전환으로 필요해진 인력 감축을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노조가 갑작스럽게 1만명 수준의 추가인력 채용을 요구하면서 이같은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문제는 현대차 노조 역시 전기차 중심으로 자동차 시장이 바뀌면서 기존 내연기관차를 만드는데 투입됐던 인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노조는 지난 13일 울산시가 주최한 4차 산업 토론회에서 2025년이 되면 내연기관차 생산량이 57% 감소하고 인력도 2700여명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 13일 울산시청에서 열린 ‘자동차 산업 미래 전망과 고용 변화’ 토론회에서 (앞줄 왼쪽부터)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 하언태 현대차 부사장, 송철호 울산시장이 발표 내용을 듣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 노조가 지금처럼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주류로 남기 위해서는 현 수준의 조합원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며 "이 때문에 노조가 친환경차 시대로 갈수록 생산인력 수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오히려 채용 규모를 늘릴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포드와 폴크스바겐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완성차 시장의 포화, 친환경차 시대 전환 등으로 인해 잇따라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현대차가 도리어 생산인력을 대규모 충원하면 원가 경쟁에서 도저히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송 지고도 ‘기아차와 같은 통상임금 미지급금 지급’ 요구도

기아자동차와 같은 기준으로 통상임금 미지급금을 달라는 요구도 사측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현대차 노조는 올들어 수 차례에 걸쳐 소식지 등을 통해 "불편한 것은 참아도 차별은 참을 수 없다"며 "기아차와 동일한 방식으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사측에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기아차 노사는 3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평균 3만1000원을 인상하고 미지급금을 1인당 평균 1900만원씩 지급하는데 합의한 바 있다. 앞서 지난 2월 법원이 기아차 노조가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통상임금 미지급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데 따른 것이다.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통상임금 미지급금 청구소송 승소 판결을 받은 후 입장을 밝히는 기아차 노조 조합원들.

반면 현대차 노조는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두 차례 모두 패소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2013년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한다는 대표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법원은 "현대차의 상여금 지급 시행세칙에 ‘지급제외자 15일 미만 규정’이 있어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2015년 11월 2심에서도 노조의 항소는 기각됐다.

그러나 기아차는 ‘고정성’에 관련된 규정이 없어 두 차례에 걸친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조가 모두 승소했다. 이 때문에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상여금 지급 시행세칙을 삭제할 것을 강하게 요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관계자는 "아무런 명분 없는 대규모 인력 충원과 통상임금 지급 등과 같은 요구를 사측이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며 "현재의 어려운 회사 상황과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변화를 노조에 충분히 설명해 절충점을 찾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