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예금보험공사로 한 통의 제보 전화가 걸려왔다. 옛 으뜸저축은행 경영진과 짜고 980억원을 대출받아 은행을 파산으로 몰고 간 장 모씨에 대한 내용이었다. 제보자는 "장씨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인근에 다른 사람 명의로 샀던 땅을 본인(장씨) 명의로 변경했다"고 알려줬다. 예보는 이 정보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해 92억원에 달하는 돈을 되찾았을 수 있었다.

이처럼 해외 은닉 재산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되는 제보(提報)를 활성화하기 위해 예보가 금융회사에서 불법대출 등을 통해 거액의 돈을 빼돌린 금융 부실 연루자의 실명(實名)을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예보 고위 관계자는 26일 "금융 부실 연루자 실명 공개 내용을 담은 예금자보호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세청·건강보험공단이 악성 조세 체납자와 사회보험료 연체자 명단을 공개하는 것처럼 금융 부실 연루자 역시 실명을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예보 관계자는 "금융 부실 연루자는 국가뿐만 아니라 예금자에게도 피해를 준다"면서 "세금·사회보험료 체납자를 공개하면서 금융 부실 관련자는 공개 못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예보는 금융회사가 파산 등을 이유로 문을 닫으면 예금자에게 1인당 최대 5000만원까지 대신 예금을 지급한다. 이후 부실 금융회사 자산을 매각하고, 회사에 손해를 끼친 전·현직 임원이나 부실 채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 이 돈을 메운다. 금융 부실 연루자가 숨겨둔 재산을 많이 찾을수록 국민 세금을 더 아낄 수 있다. 회수가 잘되면 예금액이 5000만원을 넘어 돈을 다 못 돌려받은 예금자나 후순위 채권자에게도 나눠줄 돈이 생긴다.

문제는 해외에 숨겨둔 재산을 찾아내는 게 만만찮다는 것이다. 예보는 국내 재산에 대해선 계좌 추적권(금융사 등에 금융거래정보를 요구할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해외 재산에 대해선 조사권이 없다. 예보 관계자는 "현지 탐정을 고용하는 등 갖은 수를 쓰지만 어려움이 많다"면서 "갈수록 재산 은닉 수법이 복잡해지고 있어 제보가 없으면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해외 은닉 재산 제보마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2011년 저축은행 등 부실 사태가 벌어진 이후 시간이 오래 지난 데다, 해외 재산 은닉자의 신원이 공개되지 않아 현지 교포들도 문제가 있는 사람을 알기 어려워서다. 예보가 제보를 통해 회수한 해외 은닉 재산은 지난 2015~2017년에는 약 92억원에 달했는데 작년에는 '0원'을 기록했다. 전체 해외 회수액도 2016년 620만달러, 2017년 150만달러, 작년 160만달러로 차츰 줄어드는 추세다. 예보 관계자는 "금융 부실 연루자 실명을 공개하면 주변인뿐만 아니라 교민 사회가 적극적으로 제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