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전 충남 부여군 규암면의 우듬지 영농조합. 비닐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흙은 아예 찾아볼 수 없고, 깔끔한 시멘트 바닥이 펼쳐졌다. 50㎝ 높이 구조물 위에 일렬로 놓인 '배지' 상자에는 흙이 아닌 특수 스펀지가 담겨 있고, 토마토와 파프리카 줄기가 뻗어 나와 자라고 있었다. 피부가 까맣게 그을린 농장 대표 김호연(56)씨는 스마트폰을 꺼내 '복합환경 제어 시스템' 앱을 실행했다. 배지 상자 속 수분·영양분에서부터 온도·습도·이산화탄소 농도, 풍향·폭풍 경보, 지붕 개폐 여부 등 비닐하우스 안팎의 다양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떴다. 김씨는 "온도가 오르면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3단 스크린 차양막을 치거나 지붕을 여닫을 수 있다"면서 "2000년대 초반 겨울 밤사이 난방기가 고장 나 1년 농사를 망친 뒤 한동안 하우스에서 모포를 덮고 잤는데,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모니터링하고 간편하게 조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충남 부여군 규암면의 토마토·파프리카 농장 우듬지 영농조합에서 김호연 대표가 ‘복합환경 제어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다.

이곳은 국내 '스마트팜(Smart Farm ·키워드)'의 성공 사례로 손꼽히는 토마토·파프리카 농장이다. 국내에서는 박근혜 정부 시절 '창조경제 ICT 융복합 스마트 농업'을 지원하면서부터 보급 면적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고 현 정부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스마트팜 도입하자 토마토 생산량 2.5배 늘어"

21년 차 농부 김씨의 '스마트 비닐하우스' 규모는 축구장 6개 면적인 4.6ha (약 1만4000평)로, 연간 파프리카 400t, 방울토마토 600t을 생산한다. 이전까지는 일반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다가 2013년 스마트팜을 도입했다. 도입 첫해 매출 76억원을 기록했고, 2017년에는 120억원을 돌파했다. 김씨는 "생산량이 늘면서 매출도 급성장했다"며, "현재 생산 능력은 도입 전인 2012년보다 2.5배 늘었다"고 했다. 부여군 작목반(농촌에서 작목·지역별로 공동생산·출하하는 조직) 총무 출신인 김씨는 군청을 통해 네덜란드에 스마트팜 영농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도입을 결심했다. 네덜란드 농장은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김씨 농장보다 10배 많았다. 김씨는 "하우스 안 이산화탄소 공급이 토마토 당도와 생산량을 좌우한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며 "하늘과 경험에 의존해 주먹구구식으로 키우는 '아날로그 농사'가 아닌 유럽식 '스마트 농사'를 접하자 새로운 문이 열린 것 같았다"고 했다.

때마침 김씨 농장에선 폭염으로 온실 온도가 40~50도까지 올라 꿀벌이 활동을 못해 '미수정과(未受精果)' 문제가 발생했다. 수확 2~3일 뒤 대형마트 매대에 깔린 미수정 토마토는 금세 무르고 주름졌다. 당연히 납품처이던 이랜드 계열 킴스클럽에서 항의가 들어왔다. 그러자 김씨가 스마트팜을 해보고 싶다고 킴스클럽 측에 역제안했다. 킴스클럽 박동만 청과 구매팀장은 "킴스클럽도 김씨 취지에 공감해 지금까지 13억원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출과 민간 투자로 모은 초기 비용 12억5000만원을 2년 만에 모두 갚고, 이후 농림축산식품부 스마트팜 모태펀드 지원으로 60억원을 추가 유치했다. 초기에 이랜드가 '직거래 프로그램'에 따라 안정적으로 수매해 준 것이 스마트팜 안착에 큰 도움이 됐다.

파프리카·토마토 스마트팜은 기존 농장보다 생산량이 평균 31% 늘어나고 인건비는 21% 절감된다. 이명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 농업인을 육성하고, 기업 투자를 유치해 선진 농업으로 나아가기 위해 스마트팜 정책이 중요하다"고 했다.

◇제철·작물 지도 바꾸는 스마트팜

이마트는 이달 초 1주일간 '스마트팜 딸기'로 특별 판촉 행사에 나섰다. 사실상 딸기 시즌이 끝나는 시기인 5월이지만 전북 김제 스마트팜에서 딸기 1만 팩(7500㎏)을 가져다 판매에 나선 것이다. 전통적인 딸기 산지인 논산·밀양·진주·산청에 비해 '김제 딸기'는 덜 알려져 있다. 김승찬 이마트 과일 구매담당자는 "스마트팜 시설로 키워 1~2월 제철 딸기 품질을 보여주는 김제 딸기를 소개하는 행사를 열었다"고 했다. 스마트팜 등장으로 '딸기는 겨울' '딸기는 논산' 같은 기존 공식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이마트에선 1~2월에는 전체 딸기 매출 중 스마트팜 딸기 비중이 2~3%에 불과하지만, 5월이면 20% 이상으로 오른다고 했다. 롯데마트도 지난해 5월부터 전남 담양 대추방울토마토, 전남 화순 파프리카·취청오이, 제주 표고버섯 등으로 스마트팜 상품을 확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