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카드 수수료 줄여주겠다며 만들더니
직영 가맹점 확대…결과적으로 대기업도 혜택

정부가 소상공인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세금으로 만든 ‘제로페이’ 사용처를 대기업이 직접 운영하는 곳으로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기업도 카드 수수료 경감 혜택을 볼 수 있게 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민간 사업자와 경쟁하며 제로페이 사업을 할 명분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CU, GS25,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이마트24 등 본사 직영점과 개인 운영점을 포함한 전국 편의점 4만3171곳에서 제로페이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고 밝혔다. 또 SPC그룹의 배스킨라빈스 84곳, 던킨도너츠 131곳 등 본사 직영점도 제로페이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최근엔 모든 점포가 직영점으로 이뤄져있는 스타벅스 매장에서도 제로페이를 사용할 지 여부를 논의한 바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3월 2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상점을 찾아 제로페이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소비자가 제로페이로 결제하면 판매자가 내는 수수료는 연 매출 8억원 이하일 경우 0%, 8억원 초과∼12억원 이하일 경우 0.3%, 12억원 초과는 0.5%다. 기존 카드결제 수수료보다 0.1∼1.4%P(포인트) 낮다. 페이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민간 영역 진출’이라는 비판에도 페이사업에 뛰어든 이유가 소상공인의 부담을 낮춰주겠다는 것이었는데, 그 부분이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는 지금까지 제로페이 사업에 따른 소비자 부담 경감을 강조해왔다. 서울시는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을 ‘제로’로 만든다는 뜻에서 결제서비스 이름도 ‘제로페이’로 했다. 소상공인간편결제추진사업단이 운영하는 제로페이 웹사이트에도 "제로페이는 소상공인의 가맹점 수수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 서울시와 지자체, 금융회사, 민간 간편결제 사업자가 협력하여 도입한 공동QR코드 방식의 모바일 결제 방식"이라고 돼 있다.

제로페이가 프랜차이즈 본사까지 가맹점을 확대하는 것은 제로페이 이용금액을 늘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서울시와 정부는 수십억원의 세금을 투입해 제로페이를 홍보하고 있지만 실적은 부진한 상황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체 은행의 올 1분기 제로페이 결제 건수는 6만1790건, 결제 금액은 13억6058억원에 그쳤다. 서울시가 ‘시정 4개년 계획’을 통해 발표한 올해 목표한 금액(8조5300억원)의 0.015%에 해당하는 수치다.

제로페이 홍보를 위해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31일부터 12월 14일까지 약 두 달간 쏟아부은 예산은 34억원이었다. 서울시와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도 98억원의 세금을 더 투여해 제로페이를 홍보할 계획이다.

제로페이 사업단 관계자는 "소상공인의 수수료 부담 경감이라는 취지로 시작한 사업인만큼 소상공인만 이 혜택을 봐야 한다는 주장과 결제 확산을 위해 가맹점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기업 등이 혜택을 보는 것을 일정 부분 용인해줘야 한다는 쪽의 갈등이 사업 초기부터 있었다"며 "하지만 시장확대가 먼저라는 생각에 결국 직영점까지 제로페이는 넓히게 됐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시범사업 때도 롯데리아나 크리스피도넛 등 직영점을 일부 포함했는데, 포함하는 편이 다수의 이익에 더 좋다고 생각해 이를 확대한 것"이라며 "너무 나쁘게만 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서울시 등 정부가 제로페이 사업에 나서는 것에 대해선 예전부터 논란이 있었다. 민간 금융회사의 사업 영역인 간편결제 시장에 정부가 수십억원의 혈세를 투입해 뛰어드는 것이 타당하느냐는 지적이었다. 은행, 카드사 등 대형 금융회사나 핀테크업계는 올해 초에 서울시와 중소벤처기업부가 시작한 제로페이 사업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금융위원회에 전달한 바 있다.

한 핀테크 업계 관계자는 "시장에서 여러 간편결제 업체들간의 경쟁이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제로페이에 정부 지원이 몰리면서 다른 간편결제 서비스까지 제로페이 아래로 끌려들어가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민간 페이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에서 페이 전쟁이 일어나는 추세인데, 제로페이가 나오면서 민간 부분 사업까지도 더디게 진행되는 측면이 있었다"며 "시장(민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사업이 있는데, 서울시 등 지자체가 소상공인 부담 경감을 이유로 사업을 치고 나오더니 어물쩍 그 부분을 없앤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