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무디스, 한국은행 등 국내외 경제기관이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내린 데 이어,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22일 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4%로 하향 조정했다. 이로써 남유럽 재정 위기와 내수 부진으로 2.3% 성장에 그쳤던 2012년 이후 7년 만에 가장 나쁜 경제 성적표를 받아들 가능성이 커졌다.

KDI는 이날 발표한 경제 전망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투자가 위축되고 내수 증가세가 둔화하는 가운데, 수출이 감소하면서 전반적으로 경기가 부진하다"며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1월에 제시한 2.6%보다 0.2%포인트 낮춘 이유를 설명했다. 일부 해외 경제 기관은 한국 성장률이 1%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KDI 역시 대외적으로는 미·중 무역 분쟁이, 대내적으로는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부작용이 성장률을 2.4%보다 더 밑으로 끌어내릴 위험도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 빼고 모든 기관이 잠재성장률 밑도는 성장률 예상

KDI가 22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2%포인트 낮추자 시장에서는 "생각보다 하향 조정 폭이 크다"는 말이 나왔다. 시장에선 0.1%포인트 정도 전망치를 내릴 것으로 봤다. 한 민간기관의 연구원은 "국책기관에서 0.2%포인트를 내리는 것을 보고 '경제가 정말 심각하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올 들어 한국은행(2.5%), OECD(2.4%) 등에 이어 KDI마저 성장률 전망치를 예상보다 큰 폭으로 내리면서 정부(목표치 2.6~2.7%)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이 경제 기초 체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2.6~2.7%)에 못 미친다고 보는 상황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노무라는 올해 성장률이 1.8%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심각한 수출·투자 부진이 하향 전망 결정타

KDI가 우리 경제에서 가장 안 좋게 본 것은 수출과 설비투자다. 작년 11월 전망에서 KDI는 올해 우리나라가 전년보다 4.6% 늘어난 6564억달러(약 784조원)를 수출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이번에는 올해 수출액이 전년보다 6%나 줄어든 5879억달러(약 702조원)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6개월 사이에 예상 수출액이 685억달러(약 82조원)나 줄어든 셈이다. 주력 산업인 반도체 업황 부진과 미·중 갈등에 따른 교역 조건 악화가 '수출 참사'의 주요인이다. 수출 주문이 크게 줄어든 데다 개선될 기미도 보이지 않다 보니 기업들은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KDI는 올해 설비투자 규모가 작년보다 4.8%나 줄어들 것으로 봤는데, 이는 작년 전망(1.3% 증가)보다 6.1%포인트나 낮춘 것이다. 김현욱 KDI 경제전망실장은 "수출·투자 감소세만 감안하면 훨씬 낮은 전망이 나왔겠지만, 수입 감소로 인해 순(純)수출이 늘어나는 부분이 있어서 2.4%라는 수치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내수 둔화로 올해 해외에서 들여오는 원료·물품이 크게 줄다 보니 총수출에서 총수입을 뺀 '순수출'이 늘어난 덕에 성장률 추가 하락을 막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한 이번 성장률 전망치는 6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효과(0.1%포인트)가 반영된 것이라고 KDI는 설명했다.

◇경기 저점은 올 4분기 또는 내년 상반기

민간소비도 살아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다. 성장률 하락과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 등으로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민간 소비가 당초 예상보다 0.2%포인트 낮은 2.2% 증가에 그친다는 게 KDI 진단이다. KDI는 다만 올해 취업자 수 증가 폭이 전년 대비 20만명 내외(월평균)를 기록할 것으로 봤는데, 이는 작년 전망(10만명 내외) 때보다 2배나 늘어난 것이다. 이에 대해 김현욱 실장은 "최근 보건·복지 서비스업과 농림어업 부문 취업자가 늘어나는 추세 등을 감안해 상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KDI는 향후 성장률을 더 떨어뜨릴 수 있는 요인으로 미·중 갈등 심화와 반도체 부진 장기화 등의 대외적 리스크 외에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의 정책 부작용을 꼽았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경기는 당분간 계속 하강할 것으로 보이며, 올 4분기 또는 내년 상반기쯤에야 바닥을 칠 것으로 예상됐다.

KDI는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기준금리 인하와 확장적 재정 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세수 증가세가 당분간 둔화될 것으로 보이니 재정 지출을 효율적으로 하고, 재정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가 워낙 안 좋으니 나랏돈을 풀어야겠지만 너무 많이 풀면 큰 화를 불러올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