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에서 분양한 아파트의 절반가량이 대출을 받을 수 없는 '분양가 9억원 초과' 주택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부동산 정보업체 직방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 분양 아파트 중 9억원 초과 주택의 비중은 2017년 10.8%에서 지난해 29.2%로, 올해는 48.8%로 급증했습니다.

분양가 9억원 이하 아파트의 중도금 대출은 다주택자나 부자가 아닌, 실수요자를 위한 정책입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보증하기 때문에 은행은 부담 없이 건설사에 돈을 빌려줄 수 있고, 청약에 당첨된 사람 역시 입주 전까지 목돈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최근 아파트 분양 현장에서 실수요자들은 '분양가 9억원'이란 기준을 보호 장치라기보단 규제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 집값이 오른 탓에 덩달아 분양가도 높아졌고, 분양가가 9억원이 넘는 아파트가 강북에서도 흔해졌기 때문입니다. 분양가가 9억원이 넘는 순간 대출이 막히고 최소한 5억~6억원의 현금을 손에 쥐고 있어야 입주할 수 있게 됩니다. 중견 건설사 한양이 최근 분양한 '청량리 한양수자인'은 같은 30평대라도 분양가 9억원 미만 타입은 10대 1 이상의 경쟁률을 기록한 반면, 9억원 초과 타입은 미분양을 겨우 면했습니다. 대출 가능 여부에 따라 흥행이 엇갈린 것입니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가 무주택자나 이사를 준비하는 1주택자에 한해서라도 대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더욱이 지금 정부가 적용하고 있는 '분양가 9억원'은 대표적인 낡은 규제입니다. 이 기준은 2016년 8월 '가계부채 관리방안'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당시 5억6638만원이던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이 지난달 8억2574만원으로 올라 있습니다. 가장 많은 국민이 살고 있는 중형(전용면적 62.8~95.9㎡) 아파트의 중위가는 9억9246만원입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대출 규제 때문에 청약 시장에서 실수요자가 외면당하고 있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고분양가 기준만 바꿔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국민을 대상으로 '가장 필요한 주거지원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를 조사했더니 '주택 구입자금 대출 지원'이란 응답이 32%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이라는 응답은 13.6%에 그쳤습니다. 정부가 실수요자들을 위한 정책을 내놓기에 앞서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