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초짜리 짧은 동영상을 올리는 '틱톡(tiktok)'은 성인에겐 생소하지만 최근 10대 청소년이 열광하는 스마트폰 앱이다. 국내 이용자가 200만명이 넘는다. 500만명인 10대 청소년의 약 절반이다. 틱톡의 운영 회사는 중국 바이트댄스다. 틱톡은 이용 약관에 '이용자 정보는 (중국) 법령에 따라 국가 당국이 공유할 수 있다'고 명기했다. 국내 청소년의 이름, 연락처, 위치 정보, 취향, 본인 동영상과 같은 데이터를 중국 정부가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국내 청소년 데이터의 주권(主權)이 중국 손에 있는 셈이다.

국내에선 이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없다. 반면 미국은 민감하다. 미국 싱크탱크인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올 1월 "틱톡을 통해 (미국 청소년 이용자 4000만명의 개인 정보가) 중국 당국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며 "일부 젊은 미군 병사의 정보도 넘어가 스파이 용도로 쓰일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 2월 틱톡 미국 서비스에 아동 개인 정보를 불법 수집했다는 이유로 과징금 570만달러를 부과했다.

인공지능(AI) 시대로 진입하면서 세계 각국 간 데이터 주권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주권은 범위가 영토·영공·영해와 국민으로 명확했다. 하지만 AI는 국경을 넘어 모든 국가 이용자의 데이터를 끊임없이 끌어모아 학습 재료로 쓴다. 예를 들어 구글은 세계 80국 10억대 이상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통해 전 세계인의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수집·분석하고 있다. 구글은 이 데이터를 활용해 더 똑똑한 AI를 만들고, 미국 정부는 이런 데이터를 자국 관할 아래 둔다. 미국 법률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테러나 범죄 수사를 위해 미국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를 저장 위치와 상관없이 들여다볼 권한이 있다. 미국 기업이 홍콩 데이터센터에 보관한 한국인의 데이터를 미국 정부가 제공받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은 자국에서 발생한 데이터를 해외로 뺏기지 않기 위한 법 제정에 나서고 있다.

김상배 서울대 교수(외교학)는 "국민 데이터가 외국 기업에 넘어가 다른 나라의 부를 창출하는 데 쓰이는 것은 '데이터 주권 침해'"라며 "지금처럼 데이터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면 한국은 AI 강국의 데이터 식민지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를 흡수하는 AI 시대엔 물리적인 주권 경계가 모호해진다. 데이터는 인터넷망(網)을 타고 전 세계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하고 저장되기 때문이다.

이에 세계 각국은 데이터 주권 찾기에 나선 상황이지만 한국은 개념조차 제대로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가진 데이터는 고스란히 해외에 내주면서 국내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 같은 규제로 인해 기업들이 제대로 데이터를 수집·사용조차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에 미국 유튜브, 중국 틱톡 등은 한국 이용자들에게 한국 기업의 광고를 팔아 돈을 벌면서 우리 정부에는 세금조차 제대로 내지 않는 특혜를 누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게다가 한국은 데이터 주권의 핵심 요소인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 시장을 이미 해외 기업에 거의 넘겨줬다. 클라우드는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를 저장해 분석하거나 운영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 기업 가운데 80% 이상이 미국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를 이용하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롯데·대한항공 같은 대기업부터 쿠팡·배달의민족·넥슨·왓챠·마켓컬리·여기어때와 같은 인터넷·게임업체까지 모두 아마존의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다. 아마존웹서비스의 한국 지사 관계자는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부터 대기업, 금융사에 이르기까지 한국 고객사 숫자만 수만 곳에 이른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기업들이 보유한 우리나라 이용자들의 데이터가 물리적으로 어느 곳에 저장됐는지조차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미국 클라우드 기업과 경쟁할 곳은 현재로선 네이버 한 곳뿐이다. 네이버는 춘천에 독자 데이터센터를 세웠고, 조만간 경기도에 또 한 곳을 구축할 계획이다. 반면 KT·LG유플러스와 같은 통신업체는 오히려 해외 기업들과 경쟁하기보단 이들에게 데이터센터를 임대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삼성SDS·LG CNS·SK㈜ C&C 같은 IT 서비스 기업들도 해외 기업의 협력사로 전락했다. 한 인터넷 기업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경제활동 데이터는 이미 미국 기업에 저장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며 "네이버가 '데이터 주권'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점유율을 확보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