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13일 자사 뉴스룸에 '블록체인(분산 저장 기술), 그 가능성에 첫발을 딛다'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지난 3월 출시한 갤럭시S10 시리즈에 처음으로 '블록체인 키스토어'라는 앱을 선(先)탑재한 이유를 소개한 것이다. 이 앱은 외부 해킹에서 가상화폐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콜드 월렛'이다. 한국·미국·캐나다의 갤럭시S10 이용자는 스마트폰에 가상화폐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마다 지인에게 송금하거나 가상화폐로 물건을 파는 상점에서는 결제도 할 수 있다. 삼성전자 채원철 전무는 "보안성이 뛰어나고 투명성을 갖춘 블록체인은 소비자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며 "갤럭시S10은 물론이고 앞으로 다른 스마트폰 모델에도 블록체인을 확대 적용하겠다"고 했다.

삼성전자뿐 아니다.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인터넷 기업은 물론이고 페이스북·라쿠텐·아마존 등 세계 IT(정보기술) 기업들이 앞다퉈 블록체인 기술·서비스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을 투기 수단으로 보는 광풍(狂風)이 불기도 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글로벌 주요 기업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속속 내놓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과 함께 엄청난 변동 폭으로 투기 세력의 놀이터로만 여겨졌던 가상화폐 시장도 올 들어서는 급등락이 없는 안정세를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주요 기업, 블록체인 기술 주도

네이버와 카카오는 국내 기업 중 블록체인 기술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다. 카카오는 자(子)회사인 그라운드X를 통해 다음 달 '클레이튼(Klaytn)'이라는 블록체인 서비스를 선보인다. 카카오가 개발한 블록체인 기술을 국내외 26개 스타트업들에 제공해 실생활형 앱을 선보이는 형태다. 예를 들어 동영상 앱에서 콘텐츠를 보는 이용자가 평점을 매기면 참여 횟수에 따라 이용자에게 가상화폐를 보상으로 지급하는 식이다. 네이버의 자(子)회사인 라인도 작년 선보인 '링크체인'이라는 블록체인 서비스에서 총 5개의 앱을 제공한다. 라인은 앞으로는 아시아 전역의 스타트업에 자사의 블록체인 기술을 공개할 계획이다.

국내 IT(정보기술) 서비스 기업들도 뛰어들고 있다. 삼성SDS는 국내 수산물 가공 업체들의 협의체인 ASK 수출협의회와 손잡고 수산물의 양식·출하·유통 과정을 블록체인으로 관리한다. 포장 박스에 있는 QR 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언제, 어디서 잡혔고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 위로 올라왔는지 알 수 있다. LG CNS는 한국조폐공사와 함께 지역 화폐 발행, 사용자 인증 서비스를 블록체인으로 제공한다. 현대차그룹의 IT 계열사인 현대오토에버도 자동차용 부품 생산부터 조립, 완성차 주행 이력, 수리 현황 등을 블록체인으로 관리하는 기술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기업 가운데는 페이스북이 가장 주목받고 있다. 페이스북은 연내 '리브라'(Libra·가칭)라는 가상화폐를 내놓을 예정이다. 월평균 이용자 수만 24억명이 넘는 페이스북에서 화폐를 대신해 쓸 수 있는 가상화폐다. 사용자들은 서로 가상화폐를 주고받거나 물건을 사고팔 수도 있을 전망이다. 페이스북에 하나의 독립된 화폐 체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중국 바이두·알리바바는 블록체인에 기반한 이미지 저작권 관리 서비스, 금융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미국 유통업체 월마트 역시 IBM과 손잡고 블록체인으로 신선식품 유통망을 관리하는 서비스인 '푸드 트러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미래 서비스 대부분에 블록체인 기술 적용될 것

글로벌 대기업이 블록체인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향후 모든 서비스가 블록체인상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의 핵심은 투명성·보안성과 보상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데이터를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으며 가상화폐 형식의 보상까지 기대할 수 있다. 수년 뒤에는 블록체인이 온라인 서비스의 주류가 된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가상화폐 가격도 올 들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은 작년 말 1개당 3228달러로 저점을 찍었다가 올 들어 두 배 이상 상승해 13일 오후 3시 기준으로 7107달러까지 올랐다.

규제 일변도였던 정부 역시 자세를 서서히 바꾸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해서는 신규 계좌 발급 중단, ICO 전면 금지 같은 규제는 유지하면서 블록체인과 관련한 신산업은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금융 규제 샌드박스를 발표하면서 블록체인을 적용한 서비스를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 송현도 금융혁신과장은 "실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많은 (블록체인) 기업이 등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블록체인(blockchain)

중요한 데이터를 서로 줄줄이 연결된(체인·chain) 조각들(블록·block)로 나눠, 인터넷 네트워크에 연결된 수많은 컴퓨터에 분산해 저장하는 기술이다. 데이터가 한데 모여 있지 않은 데다, 내용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보니 현재 기술로는 위·변조가 불가능하다. 가상 화폐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주는 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