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출신 알버트 비어만 사장, 벤틀리 출신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 람보르기니 출신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부사장, 메르세데스-벤츠 출신 마크 프레이뮬러 상무···.'

현대자동차그룹 곳곳에 포진한 '외인 구단'의 면면이다. 2015년 이후 이 회사에 영입된 외국인 임원만 13명.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 폴크스바겐부터 수퍼카 브랜드 부가티까지 출신은 제각각이지만 현재 개발, 판매, 디자인, 신산업 등 주요 포스트에 골고루 배치돼 있다. 업계에서는 2006년 기아차 디자이너로 영입된 피터 슈라이어 사장과 함께 이들을 '14인의 외인구단'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공통점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차례로 영입한 인물들이다. 수직적 의사 결정 구조, 상명하복 문화가 미래 신(新)산업을 발굴하는 데 맞지 않는다고 보고 자유롭고 튀는 발상을 가진 외국인 인재를 중용해 조직 혁신을 이루겠다는 전략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가 내연기관에서 전기차·자율주행차로 사업 체질을 바꾸는 과정에서 이 외국인 인재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업계가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사상 첫 외국인 사장 영입

지난달 현대차는 닛산 출신 호세 무뇨스를 전격 영입했다. 도요타·푸조시트로앵·닛산 등을 경험한 글로벌 사업 전문가인 그는 갑작스레 퇴진한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됐다. 무뉴스 사장이 흔들린다는 소문이 나자 현대차가 적극적으로 접근해 스카우트에 성공했다. 무뇨스 사장은 현대차가 외국인에게 사장직을 바로 제안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에게 맡긴 1호 특명은 북미시장 회복. 현대차 전체 매출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북미시장은 2016년 77만5000여대 이후 하락하기 시작해 지난해 67만여대까지 떨어졌다. 그는 지금 현대차 본사의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인 동시에 미주(북미·중남미) 권역의 생산과 판매를 총괄하는 직책까지 맡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그만큼 미주지역 사정이 급한 데다 그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은 인사"라고 말했다. 현대차 측은 2008년 40만여대였던 미국 판매량을 2013년 72만대까지 끌어올렸던 존 크라프칙 전 현대차 미국판매법인장과 같은 '신화'를 기대하고 있다.

연구개발도 처음으로 외국인에게 맡겨

지난해 연말 현대차 연구개발 총책임자에 오른 알버트 비어만 사장 역시 첫 외국인 연구개발 총괄이다.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는 현대차 외국인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초고속 승진 비결은 탁월한 성과다. 2015년 고성능차 개발 담당으로 영입된 그는 BMW의 고성능 브랜드 M에서 일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고성능 브랜드 N을 만들었다.

그가 개발한 i30N은 2017년 이후 지난달까지 해외에서만 1만5765대나 판매됐고 올해 1분기 고성능차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3000대가 팔렸다. 업계에선 "비어만이 영입된 이후 현대·기아차의 하체가 튼튼해지고 차체 강성도 높아졌다"며 "유럽에서 i30N은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말한다. 현대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를 총괄하는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부사장은 지난달 직속 부서로 '제네시스 모터 차이나'를 신설했다. 위기에 빠진 중국 시장에서 현대차 부활을 위해 제네시스 출시를 준비하는 것이다. 피츠제럴드는 입사 후 G80, G70 등을 잇따라 성공시켰고 제네시스 최초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인 GV80도 개발하고 있다.

외국인 인재 영입에 속도 내는 현대차그룹

성공 사례가 잇따르자 현대차의 인재 영입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초기엔 주로 디자이너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미래 신산업 분야를 개발하기 위해 외국인을 끌어모으고 있다.

미래 현대차의 먹거리 개발을 외국인에게 맡기는 셈이다. 지난해 다임러 트럭 출신인 마이크 지글러 상무를 상용차 연구개발 전략실에 영입했고 메르세데스-벤츠 출신 마크 프레이뮬러 상무를 상용해외신사업추진 부서에 영입했다.

BMW에서 고성능차 개발을 담당한 토마스 쉬미에라 부사장은 현대·기아차 상품본부장으로 일하고 있고, 역시 BMW 출신인 마틴 붸어레 상무는 미래기술전략실에서 일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국인을 영입해 조직 내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며, 특히 현대차에 가장 절실한 문화인 것은 틀림없다"면서도 "하지만 외국인들이 한국식 기업문화에 적응 못 한 채 떠난 사례 역시 다른 업종에서도 많았던 만큼 외인 구단들이 앞으로 현대차에 제대로 정착할지는 좀 더 두고 볼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