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의 A주유소는 L당 1690원 받던 휘발유를 7일부터 90원 올린 1780원에 팔고 있다. 경유는 L당 110원 올렸다. 작년 11월 6일부터 15% 내렸던 유류세의 인하 폭이 이날부터 7%로 축소되면서 기름 값 인상 요인이 생겼기 때문이다. 유류세 인하 축소로 발생한 휘발유 값 인상분은 L당 65원. A주유소는 이보다 25원 더 올렸다. 경유는 유류세 인상 요인(L당 46원)보다 64원을 더 올렸다. A주유소는 정부가 유류세를 15% 내려 L당 123원 인하가 예정됐던 작년 11월 6일에는 기름 값을 1원도 내리지 않았다. 열흘 뒤에야 100원 내렸다. 충남 보령의 B주유소도 마찬가지다. 유류세 15% 인하 4일 만에 휘발유 값을 L당 90원 내리더니 유류세 인하가 축소되자 곧바로 L당 100원을 올려받았다.

8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의 인상된 휘발유·경유 가격이 적힌 알림판 모습. 지난 7일부터 유류세 인하 폭이 7%로 축소되면서 대부분 주요소들이 곧바로 가격을 올렸다. 유류세가 15% 내렸을 때는 가격이 거의 내리지 않았던 것과 대비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류세 인하가 15%에서 7%로 축소된 첫날인 7일 기름 값을 내려야 할 때 곧바로 내리지 않다가 인상 요인이 생기자 곧바로 올려받는 주유소가 적지 않았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이모(47)씨는 "우리 동네 주유소는 그제까지는 1455원이었는데 어제 1525원으로 껑충 올랐다"고 했다. 정부가 유가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해 유가 하락기에 세금 낮추고, 상승기에 세금 올리는 데 대한 불만도 나왔다. 30대 회사원 김모씨는 "최근 몇 달 기름 값이 계속 올랐는데 세금까지 다시 올리니 부담이 적지 않다"고 했다.

◇기름 값 내릴 땐 서행, 올릴 땐 급행

지난해 11월 6일부터 정부가 6개월 한시로 유류세 15%를 내렸는데, 이로 인해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가격은 24.8원 내렸다. 정부가 밝힌 유류세 인하 예상 효과(휘발유 L당 123원)의 20%에 불과했다. 당시 인하 첫날 유류세 인하분 이상으로 소비자가격을 곧바로 내린 주유소는 전국 1만1500곳 중 6.5%에 불과했다. 1원이라도 내린 주유소도 19.2%에 그쳤다. 주유소들은 "유류세 내리기 전 비싸게 사들인 주유소 탱크 재고 물량이 소진되어야 내릴 수 있다"고 했다. 유류세 인하 일주일까지도 휘발유를 L당 123원 내리지 않은 곳이 절반 이상이었다.

이번에 기름 값이 오를 때 주유소 대응은 정반대였다. 7일부터 유류세 인하 폭이 15%에서 7%로 줄면서 가격 인상 요인이 발생하자 주유소들은 재빠르게 가격을 올렸다. 오피넷에 따르면 7일 유류세 인하 축소분(L당 65원) 이상 휘발유 값을 올린 주유소는 전국 1만1443곳 중 1395곳으로 12%에 달했다. 회사원 이모(50)씨는 "이러니 정부가 선심 정책을 펴느라 세수만 축내면서 결국 주유소 사장들 배만 불려줬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국주유소협회 등은 "급격하게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지 않도록 협조하겠다"고 했고, 정부도 "가격 담합 등 불공정 행위를 막기 위해 모니터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유류세 인하 축소 첫날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값은 전날보다 L당 22.88원 오르면서 5개월 만에 평균 1500원을 넘었다. 8일에도 전국 휘발유 값은 10원 이상 올랐다. L당 2200원 넘는 주유소도 등장했다.

◇유가 예측 잘못한 정부 선심정책의 실패

유류세 인하는 6일 종료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제 유가 상승으로 기름 값이 계속 오르자 정부는 인하율은 축소하면서 8월 31일까지 연장했다. 작년 11월 유류세 인하 이후 국제 유가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가 올 들어 30% 넘게 올랐기 때문이다. 유가가 떨어질 때 세금을 낮추고, 유가가 오를 때 세금을 올리는 거꾸로 정책이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유류세를 시점에 따라 조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정부의 유류세 인하가 정책적 효과를 발휘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당분간 기름 값 상승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유류세 인하 축소분이 반영되고,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유가가 다시 오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기름 값을 조금이라도 아끼려면 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유가 정보 사이트 '오피넷'을 통해 회사·집 주변 가격이 싼 주유소 검색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