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 아모레G, 휴젤, 대신증권….'요즘 주식시장에서 주가 안정을 목표로 자사주(자기 회사 주식)를 적극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기업들이다. 6일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4월 말까지 '주주 가치 제고' 목적에서 자사주 매입 공시를 낸 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 기업 수는 모두 113곳이었다. 증권가에선 이런 속도라면 올해 자사주를 사들이는 기업 수가 역대 최대치였던 작년 수준(279곳)을 가볍게 뛰어넘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기업이 자사주 사면 주가는 바닥?

그런데 자사주 매입이 어떤 효과를 주는지를 두고 논란이 있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주가 부양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자사주 취득은 회사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기업이 매수 시점을 정했다는 점에서 일반 투자자들은 희소식으로 받아들인다. '현재 주가가 실적 대비 저평가됐다'는 일종의 바닥 신호 효과를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사주 매입 카드가 반드시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호재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자사주 매입이 과도해지면 그만큼 기업의 투자 여력은 줄어들고, 결과적으론 기업의 미래 성장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박진환 한국투자증권 랩상품부서장은 "장기적 관점에서 주가 흐름은 기업 실적에 더 밀접하게 연동해 움직인다"면서 "기업 실적은 호전되지 않는데, 단지 기존 주주들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만 (자사주 매입을) 결정했다면 해당 기업의 주가는 지속적으로 오르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사주 샀는데 주가가 후진하기도

실제 최근 자사주를 매입한 기업들의 주가를 따져 보니 '자사주 매입=주가 상승'이란 공식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6일 본지가 한국거래소에 의뢰해 지난해 자사주를 직접 취득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공시 60건을 조사한 결과 자사주 취득 기간 중 주가 등락이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등락률을 상회한 경우는 32건이고, 하회한 경우는 28건이었다. 즉 둘 중 하나꼴로 자사주 매입 카드의 주가 부양 효과는 예상보다 미흡했던 셈이다. SK하이닉스와 네이버, 현대차 등은 지난해 자사주를 대대적으로 매입한 대표적 기업들이지만 자사주 매입 기간 중에 주가는 -20% 안팎으로 후진했고 코스피 등락률에도 못 미쳐 체면을 구겼다. 자사주 매입의 약발이 약했던 사례는 더 있었다. 게임 업체 넷마블은 작년 말에 2000억원 상당의 자사주 매입 정책을 내놨는데, 발표 당일 주가는 단숨에 16% 급등했다. 하지만 주주들이 기대했던 장기적인 주가 부양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박소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주가 급락 이후의 자사주 매입은 바닥 시그널로 해석할 수 있다"며 "주식시장이 부진할 때 자사주 매입 뉴스는 주가의 추가 하락을 막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무늬만 주주 환원책'에 주의해야

올해 승승장구하고 있는 미국 증시를 떠받치는 원동력은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카드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올 1분기(1~3월) 미국 기업들은 작년 동기 대비 50% 늘어난 2270억달러(약 266조원)의 자사주 매입을 진행했다. 애플,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기업들이 지난해부터 대부분 자사주를 매입했다. 미국 전문 경영인들의 주요 평가 항목 중에 주가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자사주 매입 확대 트렌드는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JP모건은 미국 기업들이 올해 이익 증가분의 상당 부분을 자사주 매입에 쓸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강세장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애플은 최근 750억달러(약 88조원)어치의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원일 제브라투자자문 대표는 "미국에선 자사주 매입과 동시에 소각까지 하므로 주가가 오르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며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으면 발행 주식 수는 변하지 않고, 급전이 필요해진 기업들은 갑자기 자사주를 매물로 내놓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취득한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는다면 기업의 자사주 취득은 경영권 방어나 지주사 준비 작업 용도에서 활용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투자자는 자사주 매입 자체보다는 자사주를 앞으로 회사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더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