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은 최근 올 1분기 인도 자동차 판매 실적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중국과 미국 시장에서 판매 부진이 심각한 가운데 그나마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가던 인도 판매량이 3.4%나 감소했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실적만 나빠진 게 아니라 인도 전체 자동차 시장이 1.9% 쪼그라들었다. 정 부회장이 지난달 초 인도 첸나이 현대차 공장 등 현지 점검을 나간 이유다.

자동차 업계의 한 줄기 희망이었던 인도 시장마저 하락세로 돌아서자 "글로벌 자동차 시장 축소가 본격화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미 상당수 글로벌 연구기관은 올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0~1%대 성장률로 정체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1분기 결과는 더 충격적이었다. 현대차 IR팀(투자자 관리팀)이 1분기 글로벌 자동차 산업 수요(전체 판매량)를 집계한 결과 전년 동기 대비 6.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은 지난해 6% 판매량이 줄어든 데 이어 1분기에는 10.5% 급감했다. 또 다른 신흥 시장인 러시아도 1분기에 0.3% 줄었다. 선진 시장인 유럽과 미국도 같은 기간 각각 3.3%, 2.5%, 한국 시장도 3% 축소됐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는 "글로벌 경기 둔화뿐 아니라 차량 공유 확산 등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주요 자동차 시장 판매량이 줄어들고 있다"며 "위기감이 커지면서 자동차 기업들이 생존 전략을 완전히 새로 짜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의 '양적 성장' 끝났나

글로벌 수요 팽창을 견인해 온 중국 시장의 후진이 가장 우려된다. 핵심 원인은 중국 경제성장률 쇠퇴다. 2007년 14.2%에 달했던 중국 성장률은 지난해 6.6%로 2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성장률 둔화는 자동차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미·중 무역 전쟁과 중국 정부의 구매세 인하 종료(2018년), 차량 공유 확산까지 악재들이 겹치고 있다. 중국인들의 자동차 소비 성향도 독일·일본 브랜드가 만든 고급차와 가격은 낮은데 품질이 개선된 중국차로 양극화돼 가고 있다. 입지가 애매한 현대차가 지난 1분기에 2년 전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 때보다도 못한 실적을 거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시장도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지난달 미국의 JD파워는 지난 1분기 미국 자동차 판매가 2014년 4분기 이래 최저 수준에 이르러 침체가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미국 정부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할부 금리 동반 상승으로 소비 심리가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해 4차례나 기준금리를 올렸다. 미국 자동차업체 임원들은 올해 판매가 2014년 이후 처음으로 1700만 대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도 시장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지난달 인도 자동차 수요는 전년 동기 대비 17% 감소해, 2011년 10월 20% 감소한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양진수 현대차 글로벌경영연구소 팀장은 "인도는 성장을 예상했는데, 최근 은행 부실 채권 문제가 불거지며 대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면서 "게다가 농가 소득 감소, 경제성장률 둔화가 지속되면서 소비 심리가 얼어붙어 있다"고 말했다.

◇생존 전략 다시 짜는 기업들

신흥국마저 성장을 멈추자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나서고 있다. GM은 최근 안 팔리는 세단 중심의 북미 공장 5곳을 폐쇄하고 1만4000명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단가가 높은 고가의 픽업트럭으로 판매 중심도 바꿨다. 그 결과 1분기 매출은 줄고, 순이익은 늘어나는 '실속 챙기기'에 성공했다.

포드 본사는 3년간 110억달러(약 12조9000억원)의 비용 줄이기 작전에 돌입해 있다. 최근 포드 본사를 방문한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포드는 현재 제품·공정·서비스·수익모델·조직 등 5가지 분야의 혁신을 진행 중"이라며 "특히 과거와 전혀 다른 방식의 자동화 공정을 도입해 인력을 대대적으로 감축, 비용을 절감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을 겨냥한 전략도 수정하고 있다. 닛산은 중국에 2022년까지 전기차 신차 20종을 무더기로 내놓을 예정이다. 중국에서 미래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지난달 상하이에 자율주행·전기차 기술을 집중 개발하는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했다. 중국 소비자 입맛에 맞는 신차를 내놓기 위해서다. 현대차도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2%대로 떨어지자, 판매량보다 수익성 확보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는 노조에 막혀 구조조정이나 공정 혁신은 더디고, 정년퇴직을 통한 자연 구조조정을 기다리는 형편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올해 본격 축소기로 접어든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 기업들의 대응이 너무 늦은 감이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