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경쟁에 뒤처지면 식민지가 됩니다. 제2의 금 모으기 운동이라도 하고픈 심정입니다."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장인 차상균 교수(전기·정보공학부)는 올 2월 미국출장을 다녀오고 좌절했다. 내년 봄 문을 여는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의 신임 교수로 영입할 AI 인재를 찾기 위한 출장이었다. 지난달 23일 서울대 관악 캠퍼스에서 만난 차 교수는 "실리콘밸리와 뉴욕에서 AI 연구자 40여 명을 만나면서 현재 서울대의 교수 인사 규정으로는 세계 톱 인재 유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유는 연봉과 연구 환경이었다. 차 교수는 "실력 있는 4~5년 경력의 박사급 연구원도 연봉 60만~70만달러(약 7억~8억원)를 받고 톱 인재는 10억원쯤 한다"고 했다. 현재 서울대 정교수의 평균 연봉은 1억500만원. 호봉제와 서열로 이뤄진 풍토에서 '30대 AI 천재 연구자'를 데려와도 파격적 대우는 불가능하다.

연구 환경 차이도 크다. 미국은 스탠퍼드대와 같은 유명 대학도 파격적 연봉을 제시하는 구글·아마존과 같은 민간기업에 교수를 뺏기지 않기 위해 기업, 민간연구소와 겸직(兼職)을 허용한다. 반면 서울대는 총장의 허가를 얻어야, 주당 8시간까지 민간 기업의 연구를 맡을 수 있다. 차 교수는 "세계는 빠르게 움직이는데 한국 대학은 여전히 제자리"라고 했다.

차 교수는 "지금이 조선시대 말기 같다"고 했다. "바깥에선 미·중 열강이 첨예한 디지털 패권 경쟁을 벌이는데 우리는 엉뚱한 데만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 최고 인재를 유치하려면 미국 대학이 이미 하는 일부터 우리도 가능해야 한다"며 "유능한 신임 교수를 유치할 때 수십억 규모의 연구 기금을 자유롭게 과제 연구에 쓰도록 지원하거나, 글로벌 기업과의 겸직도 이젠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대 공대는 학부 과정의 AI 인재 육성에도 발목이 잡혀 있다. 대표적인 것이 15년째 제자리인 컴퓨터공학부 정원(55명) 문제다. 현재 전공을 불문하고 AI 기초 학문인 컴퓨터를 배우려는 학생들의 수요가 뜨거운데 단 한 명도 정원을 늘리지 못한 것이다. 서울대 측은 "수도권 규제(수도권정비계획법) 때문에 정원(定員)을 마음대로 늘리지 못하는 게 문제"라는 입장이다. 반면 "서울대 공대 각 학과가 정원 지키기라는 이기주의에 얽매인 것도 한 원인"이라는 말도 나온다. 공대가 자체적으로 800여명인 정원을 재분배해 컴퓨터공학부 인원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학과 정원=교수 숫자'라는 인식 때문에 AI 인재 육성은 서울대에서 계속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현재 컴퓨터공학부는 복수전공·부전공의 정원도 각각 상한선 55명으로 묶여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컴퓨터공학부 복수전공·부전공을 지원한 타과 학생만 299명이었지만 정원 한계 때문에 106명밖에 뽑지 못했다. 지난해 미국 스탠퍼드대가 컴퓨터사이언스 학부생만 739명을 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실용보다는 상아탑 논리를 우선하는 교수 사회 풍토도 서울대가 첨단기술 인재 양성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원인이다. 최근 서울대가 정부·삼성전자와 공동 추진한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이 무산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대 교수들 사이에 "공대만 수혜 보는 것 아니냐" "서울대가 기업 직원 양성소냐"는 반발이 거셌던 것이다. 차국헌 서울대 공대 학장은 "점차 인구가 줄고 있고, 국가 경쟁력은 풍전등화인데 지금처럼 학칙과 규제, 내부 갈등에 묶여 있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