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쓰촨·칭하이·광시·안후이·허난 등 23개 성(省)과 시(市)에 있는 300여개 소규모 병원의 환자들은 대도시 유명 병원의 전문의 2000여명으로부터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원격의료 서비스를 통해서다. 환자들은 온라인을 통해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의 명의와 상담하고 필요한 약 정보를 제공받을 수도 있다. 중국엔 무인 진료실에서 혈압과 체온을 재고 인공지능(AI) 의사에게 증상을 얘기하면, 이를 기초로 원격지의 의사가 약을 추천하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원격진료를 뛰어넘어 스마트폰 앱과 AI가 의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지난달 18일(현지 시각)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타슈켄트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특별한 곳을 방문했다. 바로 인하대 병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원격협진을 하고 있는 타슈켄트 인하대였다. 국내 대학 수출 1호로 2014년 10월 개교한 타슈켄트 인하대는 한국의 의료진과 모니터 화상을 통해 환자를 협진한다. 양국 의료진이 조직 검사 결과를 영상으로 공유하며 어떻게 치료할지 협의하는 식이다. 이 현장을 지켜본 문 대통령은 "원격의료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도 점차 개선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원격의료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말했지만 정작 인식 개선이 필요한 것은 국민이 아니라 의료계와 정부 당국, 국회다. 지난해 8월 문 대통령은 "도서벽지에 있어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운 환자들을 원격의료하는 것은 선한 기능"이라며 원격진료 활성화를 당부했다. 그러나 "원격진료가 의료민영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 "동네병원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의료계 반발에 한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원격진료는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시범사업을 시작하면서 공론화됐다. 하지만 이후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뒤를 이어 추진하고도 아직 규제를 풀지 못했다. 시범 서비스만 19년째다. 대통령이 지시하고, 유관 부처 검토를 거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시범사업을 추진하다 다시 의료계의 반발에 가로막히고 시간이 흘러 다시 정권이 바뀌는 되돌이표가 계속되고 있다. 올해 정부가 기존 원격진료를 ‘스마트진료’로 재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또 이러다 말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보기술(IT) 선진국 가운데 원격진료를 금지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일본은 2015년 원격의료를 전면 시행했고, 지난해에는 ‘진료 지침 개정’을 통해 전국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병 치료를 목적으로 한 앱이 의료기기로 인정받으면서, 치료앱이 상용화할 것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독일도 지난해 원격의료 금지를 폐지했으며, 프랑스도 지난해 9월부터 원격진료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전체 진료 중 약 17% 정도가 원격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원격진료는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환자가 직접 의료기관에 가지 않고서도 의료 통신망을 이용해 의사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의료계는 낮은 수가로 인한 병·의원 도산, 의료 질 하락, 환자 정보 유출 등을 내세워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를 반대하고 있다. 국회는 대규모 이익 단체인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등의 눈치를 보면서 손을 놓고 있다. 복지부는 의료법 개정안이 의료계와 논의해야 하는 사안인 만큼 현재 계류 중인 법안을 수정할지 아니면 새로운 법안을 내놓을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미적대는 사이 피해는 고스란히 시장과 환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원격환자를 모니터링을 하는 스타트업들은 대부분의 매출을 해외에서 벌어오거나, 생존을 위해 해외 진출을 고민하고 있다. 오지의 환자들은 여전히 의료 사각지대에 남아있다. 세계 최초 5G(세대) 상용화 등 최첨단 기술을 확보하고도 다른 나라들이 앞서가는 것만 바라보고 있다.

원격진료뿐만 아니라 차량공유 등 신산업들은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정부는 여전히 당사자인 국민보다는 격렬하게 반대하는 다른 당사자들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19년째 허송세월 보낸 원격진료를 20년으로 미룰 것인가. 손 놓고 몸 사리고 있는 공무원이나, 가만히 있으면서 인식이 개선되길 바라는 대통령이 답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