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던 짐 매티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밀 메모를 보냈다. "현재 미국은 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의 야심 찬 인공지능(AI) 추진 속도에 밀리고 있다"며 "서둘러 AI 국가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보도한 뉴욕타임스는 "(국방 최고 책임자가 이런 요청을 한 것은) AI가 단순히 경제·산업의 변수(變數)가 아니라 국가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라며 "AI가 차세대 전쟁의 승패(勝敗)를 좌우하는 '게임 체인저(중요 역할)'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후 미 행정부는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반(反)실리콘밸리 인사로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IBM, 퀄컴 등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AI 등 첨단 분야에서 중국 견제 방안을 논의했다. 올 2월 트럼프 대통령은 'AI 분야의 미국 주도권 유지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른바 '아메리카 AI 이니셔티브(Initiative·주도권)'다. 여기에는 "AI 분야의 리더십을 지키는 것은 경제, 국가 안보(安保)의 최우선 요소"란 내용이 담겼다.

현재 미국·중국·일본·프랑스 등 주요 국가 정상(頂上)은 일제히 전면에 나서 AI 정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주도권을 쥐지 못하면 경제·산업 분야뿐 아니라 국가 안보까지 무너져, 자칫 세계의 변방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트럼프-시진핑, AI 패권 경쟁

무섭게 치고 올라가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다. AI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기업의 연구개발에 정부의 인재 육성과 규제 철폐가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중국과 같은 계획경제 국가가 유리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10년 내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란 예측은 이미 구문(舊聞)이다. 미국 앨런인공지능연구소는 중국에서 나오는 AI 논문의 양(量)은 13년 전 미국을 넘어섰고, 질(質)적인 측면에서도 중국의 추월이 임박했다고 분석했다. 많이 인용된 상위 10% 논문 수가 2020년에 중국이 미국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인용지수 상위 1%의 고급 논문의 추월은 2025년으로 예측했다. 중국 국무원이 2017년 '차세대 AI 발전 계획'을 통해 공언한 "2025년 서구의 AI 기술력을 넘겠다"는 시점과 일치한다.

중국 AI타운, 입주땐 주택보조금 5억원… 2200명이 350개 프로젝트 진행 - 중국 저장성 항저우시에 있는 ‘항저우인공지능(AI)타운’의 입구. 343만㎡(약 103만7575평) 부지에 알리바바-저장대 혁신기술연구센터, 바이두 혁신센터 등 17개 연구기관이 입주해 350여 개의 연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2200여 명이 상주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3년 내 상주 인원 규모를 2배 이상 늘릴 계획이다. 중국 정부는 이곳에 입주한 AI 인재에게는 최대 300만위안(약 5억1800만원)의 주택 보조비를, 혁신 스타트업엔 최대 600만위안(약 10억4000만원)의 연구개발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최근 연설 때마다 AI를 화두(話頭)로 내세우고 있다. "14억 시장에서 발생하는 데이터와 풍부한 시장 잠재력을 AI 기술 개발의 지렛대로 활용하자"는 주장이다. 이미 AI 기업 수(3341곳), 특허(6만8467건), AI 일자리가 많은 도시(쑤저우) 등 상당수 분야에서 중국은 세계 1위를 휩쓸고 있다. AI 인재(1만8232명) 경쟁에서도 1위 미국(2만8536명)을 추격하고 있다.

◇日·佛·獨… '살아남기' 경쟁

미·중 패권 경쟁 틈바구니에서 일본이나 프랑스, 독일 등도 국가 수장이 앞장서 필사적인 생존 경쟁을 하고 있다.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통합과학기술혁신회의 위원장을 겸직(兼職)하고 있다. 지난 3월 이 회의는 매년 AI 전문 인력 25만명을 배출하겠다는 과감한 정책을 내놨다. 일본은 모든 대학에 AI 관련 수업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자국(自國)을 '전 세계 AI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전 세계 주요 최고경영자(CEO)를 대통령궁(宮)으로 초청하는 '스킨십 외교'를 하고 있다. 작년 5월 엘리제궁에 삼성전자·구글을 비롯한 50여 기업 CEO를 초청해놓고 "공짜 점심은 없다. 당신들의 투자 약속을 원한다"고 압박할 정도다. 삼성전자의 최고전략책임자(CSO)인 손영권 사장은 작년 3월 독대(獨對)를 비롯해 수차례 마크롱 대통령을 만난 끝에 결국 파리를 AI 연구 거점 중 하나로 삼았다. 독일은 제조업에 AI를 접목한 '인더스트리 4.0'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차국헌 서울대 공대 학장은 "한국은 AI 반도체 등 기술 우위가 있는 특화 분야를 노리고, 제조 강국이란 공통분모가 있는 독일과 손잡는 식의 차별화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