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원인 조사가 지연되면서 중소기업은 도산 직전입니다. 한국산 ESS 안전을 놓고 해외에서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보고 있습니다."

국내 ESS업계는 2일 정부가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 중간 상황을 공개하고, 다음달 초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하자 "긴박한 현장 상황을 모르는거 같아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화재에 대한 정확한 원인 규명과 대응도 중요하지만, 신규 발주가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면 중소기업은 견디기가 힘들다"면서 "국회에서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이 필요한게 아니라 ESS업계도 한시가 급하다"고 말했다.

ESS는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한 전기를 모아뒀다가 필요할 때 가정이나 산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대규모 장치다. 2017년 8월부터 올 1월까지 전국에서는 21건의 ESS 화재가 발생했다. 이중 70% 가량은 재생에너지와 연계된 ESS다. 원인 모를 ESS 화재가 이어지자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ESS 가동 중단을 권고했다. 신규 ESS 설치는 올 1분기 0건이다. 전국 ESS의 35%가 가동이 중단됐다.

올 1월 전남 완도의 한 태양광 발전소 내 에너지저장장치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다.

◇ 연기되는 ESS 화재 사고 조사 발표…"연내 신규 발주 어려울까 우려"

정부는 올 1월부터 ‘민관 합동 ESS 화재 사고 원인 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A업체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6월에 조사 결과를 발표해도 유관부서 검토를 감안하면 올해 안에 신규 발주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결국 올해 장사는 끝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B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이후 ESS 준공검사를 통과한 곳도 없고, 신규 발주 시장은 죽었다"며 "원인규명이 늦어질수록 손해는 커지고 있는데, 조사 결과 전이라도 신속히 신규 발주가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C업체 관계자는 "화재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고 시장이 안심할 수 있는 대책은 필요하지만, 이와 별개로 ESS 시장이 움직일 숨통은 트이게 해줘야 한다"며 "가동 중단에 따른 손실에 대한 보상방안은 없고 정부가 무작정 시장을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시 아세아시멘트 공장에 있는 에너지저장장치에 화재가 발생했다.

◇ "ESS 육성한다는 말 뿐… 제도적 뒷받침 필요"

정부는 이날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 중간 상황을 공개하면서 "우리나라 ESS 산업이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핵심산업으로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경쟁력 강화 및 보급 활성화 지원 방안을 마련해 사고 원인조사 결과와 함께 발표할 계획"이라고 했다.

ESS업계 관계자는 "미국 등에서는 ESS 보조금을 활성화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ESS 보조금 기한이 대부분 내년이면 끝난다"며 "정부가 말로만 지원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이 없다"고 했다. 미국은 최근 ESS 보조금인 ITC(Investmenet Tax Credit)를 내년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ESS 조사 결과 발표가 늦어지면서 업체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LG화학은 올 1분기 영업이익이 2754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57.7% 줄었다고 발표했다. ESS 화재로 ESS 가동이 중단되면서 관련 손실만 1200억원을 기록했다. 가동 손실 보상과 관련된 충당금 800억원, ESS 출하를 못해 발생한 판매손실 400억원을 일회성 비용으로 처리했다.

삼성SDI는 올 1분기 영업이익이 1188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 대비 65% 늘었다. 그러나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하면 52.2%가 줄었다. 삼성SDI는 올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선제적으로 ESS의 안전성을 높이는 조치를 했다"며 "정부의 안전 기준이 발표되는 즉시 매출을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