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 연매출 100억원대인 중소 프랜차이즈 업체 지호한방삼계탕에는 29일 온종일 비상이 걸렸다. 공정거래위원회에 가맹점에 지난 1년간 공급한 닭 등 수십 가지 재료의 상·하한 가격을 신고해야 하는 시한(30일)을 하루 앞두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4월 본사로부터 가맹점주를 보호하겠다며 필수 품목(매출 상위 50%)의 공급가 상·하한선을 공개하도록 '가맹사업법 시행령'을 바꿨다. '공급가 상·하선'인 만큼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 공급 원가는 아니라는 게 공정위 입장이다. 이 정보는 창업하겠다는 의사만 표시한 '예비 창업주들'에게 본사가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이 회사 이영채(41) 대표는 "공정위 얘기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1년간 똑같은 값에 재료를 공급하는 우리 같은 업체는 그게 바로 원가 공개"라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업계가 '가맹점 필수 품목 상·하한가 공개'로 큰 혼란에 빠졌다. 당초 프랜차이즈협회가 지난달 13일 '가맹사업법 시행령' 효력을 정지해 달라며 가처분 신청을 내자, 프랜차이즈 업계는 지난주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신임 헌법재판관 임명 등으로 헌재의 결정이 늦어지면서, 30일까지 가격 자료를 제출하게 됐다. 한 제빵·제과 프랜차이즈는 1000개가 넘는 항목의 가격표를 만드느라 부산을 떨었다. 만약 30일까지 내지 않으면, 가맹점을 추가 모집할 수 없고 과태료 1000만원을 내야 한다. 이 업체 관계자는 "가맹점 모집을 못 하면, 프랜차이즈는 죽으라는 소리"라고 했다. 이번에 공정위에 가격 정보를 내야 하는 프랜차이즈는 전국적으로 5700개에 달한다. 더 큰 문제는 헌재 판단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협회 관계자는 "공정위가 본사 제출 자료를 검토하는 데 1~2개월 소요되는데, 그 전에 헌재 결정이 나와야 한다"며 "결정이 더 늦어지거나 기각되면, 본사의 중요한 경영 기밀이 고스란히 공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업계 "영업 비밀 다 샐 것"

프랜차이즈 본사가 수익을 얻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가맹점에서 매출액의 일정 부분을 받는 로열티(상표 사용권)와 각종 재료를 공급하면서 수익(물류 마진)을 남기는 방식이다. 국내 프랜차이즈의 80%는 물류 마진으로 수익을 얻는다. 외국은 가맹점에 원가로 재료를 공급하고, 매출액의 일부를 가져간다.

최근 국내 프랜차이즈 업체가 치즈·닭 등을 공급하면서 과도한 수익을 얻는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공정위가 재료 가격을 공개하라고 한 것이다. 프랜차이즈 업계의 우려는 예비 창업자를 통해 정보가 공개되는 것이다. 한 커피 프랜차이즈 본사 관계자는 "창업 의사가 있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며 "경쟁 업체 관계자가 예비 창업자인 척하고 정보를 받아 가도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또 시행령에 따르면 본사는 가맹점이 본사에 지급한 필수 품목 가격과 적정 도매가격의 차액(차액 가맹금)도 공개해야 한다. 한 커피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커피 원두를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가맹점 공급 가격은 달라진다"며 "이를 시장가격과 일률적으로 비교할 수도 없고, 이를 공개하면 본사의 가격 경쟁력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고 말했다.

◇"제품 공급가 공개로 소비자 불만 커질 수도"

'가맹사업법 시행령'이 대기업보다 중소 프랜차이즈 회사에 더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가격 공개에서 프랜차이즈 본사가 직접 생산하는 제품은 제외된 반면, 외부에서 구매해 공급하는 것만 해당한다. 한 소규모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대형 프랜차이즈는 자체 생산 시설을 갖추고 제품을 생산할 수 있지만, 우리 같은 중소 업체는 모두 외부에서 조달해 가공 후 가맹점에 공급한다"고 말했다.

가맹점주들도 '공급가 공개'를 무조건 반기는 것은 아니다. 한 커피 가맹점주는 "4000원 하는 커피 한 잔 원두 가격이 500원이라고 하면 소비자들 불만이 폭발하지 않겠냐"며 "임대료·인건비 등은 생각도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의 불필요한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국내 프랜차이즈 업체도 '로열티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건전한 시장 경쟁을 통해 프랜차이즈 업체를 선진화할 필요는 있다"며 "다만 강제적인 가격 공개를 하면, 시장이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