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가치 투자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 연평균 수익률 29.2%의 전설적인 펀드 매니저 피터 린치….

이런 투자 대가들이 쓴 책이 국내 독자들에게도 친숙하게 된 데는 번역가 이건(58)씨의 역할이 컸다. 그는 은행·증권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 고수들의 저서 50여권을 우리 말로 옮겼다. 최근에는 버핏이 자신의 투자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 앞서 직접 쓴 주주 서한과 주총 현장에서의 질의응답을 묶은 책 '워런 버핏 바이블' '워런 버핏 라이브'를 번역했다. 번역가로서는 드물게 팬까지 있어, 저자 대신 역자 이름을 보고 책을 골랐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난 25일 그를 만나 '투자 대가의 어깨에 올라타는 법'을 물었다.

◇"가장 위험한 적은 자기 자신"

피터 린치가 지난 1977~1990년 운용한 '마젤란 펀드'는 월가(街)의 전설이다. 그가 펀드 매니저로 일한 13년의 연평균 수익률은 29.2%였다. 11년은 미국 증시 평균보다 더 높은 수익을 냈고, 마이너스(-) 수익률은 한 차례도 없었다.

그 펀드에 투자했다면 떼돈을 벌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펀드 가입자 절반 이상이 손실을 봤다. 이유는 뭘까. 이씨는 "투자자들이 탐욕과 공포에 휘둘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장이 꼭지일 때 탐욕 탓에 더 돈을 붓고, 반대로 시장이 바닥일 때는 공포 때문에 돈을 뺀 것이다. 이씨는 "투자 역사상 손꼽히는 펀드를 가져다줘도 '자기 자신'을 못 이기면 성공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가치 투자의 아버지'이자 버핏의 스승인 그레이엄은 "투자자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시장을 예측하려 하지 마라"

그러면 '꼭지'와 '바닥'을 예측하면 되지 않을까. 이씨는 "버핏을 포함한 가치 투자자는 시장을 예측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출렁이는 경기를 내다보길 포기하고, 대신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려 애쓴다. 투자처를 잘 고르고 느긋하게 기다리면 언젠가 가격이 오른다는 것이다. 그는 "버핏이 고른 주식도 시장이 폭락할 땐 같이 폭락했고, 주가가 반 토막 난 때도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버핏은 기다렸고, 결국 성과를 거뒀다. 버핏의 40년 지기이자 사업 파트너인 찰리 멍거는 "투자에는 애태우지 않고 느긋한 마음으로 주식을 보유하는 기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기 투자 시에는 주가가 떨어져도 괴로워할 이유가 없다.

'투자 전문가'라면 시장을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전문가를 믿는 건 쉽지 않다. 예컨대 증권사 직원이 추천하는 펀드가 진짜 좋은 건지 확신하기 어렵다. 버핏은 "이발사에게 이발할 때가 됐는지 물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발사는 돈을 벌기 위해 손님들에게 "이발하는 게 좋다"고 답하기 일쑤라는 얘기다.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라"

초보 투자자에게 좋은 방법은 뭘까. 버핏은 "적극적 투자자가 아니라면 장기간에 걸쳐 인덱스 펀드에 적립식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덱스 펀드는 미국 S&P 500 지수, 한국 코스피200지수 같은 주가 지수만큼 수익률을 내는 상품이다. 버핏은 자기 아내를 위해 미리 준비한 유언장에 "재산 90%는 S&P 500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고, 나머지 10%는 미국 단기 국채에 투자하라"고 썼다.

인덱스 펀드는 증시에 상장된 우량 기업 대부분에 분산 투자하기 때문에 '시장 평균' 수익률을 얻는다. 시장을 이길 순 없지만 지지도 않는다. 인덱스 펀드를 최초로 만든 존 보글은 "건초 더미에서 바늘을 찾느니 그 건초 더미를 통째로 사는 게 쉽다"고 표현했다. 더구나 운용 보수가 싸다. 이씨는 "주가는 오르기도 내리기도 하지만, 한번 빠져나간 보수는 영원히 사라진다"면서 "인덱스 펀드 투자는 평범한 사람도 인내심만 갖고 있다면 합리적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이라고 했다.

투자 대가들의 가르침을 머릿속에 꿰고 있는 이씨는 자기 재산을 어디에 투자하고 있을까. 그는 금융자산 대부분을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버핏의 재산 99%가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인 만큼, 거기에 투자하면 버핏만큼의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고 했다. 말 그대로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