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예상보다 부진한 경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그간 '재정(財政) 효과'에 가려져 있던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이 비로소 드러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소상공인 폐업이 속출하고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등 민간 경제 활력이 급속히 떨어지는데도 정부는 줄곧 "견실한 성장을 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돈 풀어 경기 부양을 할 수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실제 작년 4분기엔 정부가 기자재 구입비나 사무실 유지비, 건강보험 급여비 등 지출을 대대적으로 늘린 덕분에 전 분기 대비 1.0% 깜짝 성장을 했다. 정부 지출의 성장 기여도(1.2%포인트)는 10여 년 만에 가장 높았다. 그러나 올 1분기엔 신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추진 등에 예상보다 시간이 걸리면서 재정 지출이 더뎌 정부의 성장 기여도(-0.7%포인트)가 뚝 떨어졌고, 곧바로 역(逆)성장에 빠진 것이다.

또한 경제 지표가 나빠지는데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 주도 성장을 고집한 현 정부가 '마이너스 성장률 쇼크'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하성(현 주중대사)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작년 11월, "내년(2019년)에는 소득 주도 성장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장담했고, 홍장표(현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 전 경제수석은 작년 6월 "소득 주도 성장의 긍정 효과가 90%"라고 주장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심각한 수출, 더 심각한 투자

지금 민간 경제는 '중환자' 상태다. 1분기 수출은 작년 4분기 대비 -2.6%, 수입은 -3.3%를 기록했다. 이달 초 국제통화기금(IMF)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0월(3.7%)보다 0.4%포인트 낮은 3.3%로 내릴 만큼 세계 경기가 빠르게 식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 쇼크가 그 증거다. 지난 5일 삼성전자가 1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1분기 대비 60% 폭락했다고 밝힌 데 이어, 25일엔 SK하이닉스마저 1분기 영업이익이 69% 급감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주력 제조 기업들이 정책 불확실성 속에 설비 투자를 꺼린 결과, 설비 투자 증가율(-10.8%)이 외환 위기 이후 최악이었다. 수출과 설비 투자 부진은 결국 제조업 성장률을 -2.4%로 끌어내렸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반도체 수퍼 사이클(초호황) 정점에서 출범한 이번 정부가 반도체만 믿고 기계 산업 등 제조업 육성에는 손을 놓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민간 소비는 괜찮다"는 게 정부 주장이지만, 1분기 민간 소비는 작년 4분기보다 0.1% 늘어나는 데 그쳐 3년 만에 최저였다. 가계 살림도 어려워져 지출 규모를 줄이고 있다. 25일 통계청이 발표한 작년 전국 가구의 가구당 월평균 소비 지출은 253만8000원으로 전년보다 0.8% 줄었다. 물가 상승을 고려한 실질 소비 지출은 243만원으로 더 큰 폭(2.2%)으로 감소했다.

◇정부 '상저하고(上低下高)' 기대, 전문가들 "하반기도 어려울 것"

한국은행은 "전망대로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이 상반기 2.3%, 하반기 2.7%를 기록해 연간으로 2.5%를 달성하려면 산술적으로 2분기엔 1.2%(전기 대비), 3분기 0.8%, 4분기 0.9%씩 성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기엔 하반기로 갈수록 반도체 경기가 풀려서 수출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해외 투자은행(IB)들의 의견은 다르다. 25일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ML), 골드만삭스 등은 최근 보고서에서 "반도체와 석유 제품 등 주력 제품 수출 상황과 최대 수출 상대국인 중국 경기 등을 감안할 때 한국 수출이 하반기에도 'V자형'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반도체 경기 회복 시점이 당초 예상했던 올 3분기보다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반기 경기가 더 나아질 가능성도 회의적이다. LG경제연구원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2.5%에서 2.3%로 낮추면서 "고용 부진, 지속되는 저물가, 미약한 국내외 수요 등 때문에 국내 경기는 하반기에도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올해 성장률 2% 사수도 힘든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한국은행이 올해 안에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 궤도 수정에 대한 명확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며 "돈을 더 풀고 금리를 인하하는 정책이 더해져야만 하반기에 성장률이 반등해 연간 2%대 유지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